바퀴벌레와 춤을
장순 지음 / 푸른물고기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과 곤충은 닮은 점이 많다.  개미는 그들의 사회를 만들고 각자의 의무를 수행한다. 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단체 생활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다른 세력과 전쟁을 하며, 종족번식을위해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과 비슷한 환경을 이루고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애정과

동질감은 커녕, 무감각하고 적대적이기만 하다.

 

그들은 인간의 입장에선 징그러운 존재에 불과하고, 보이면 박멸해야 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된다.

개미와 모기, 바퀴벌레등 해충들의 존재를 지워주는 다양한 약품들, 방충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면 그들의 존재를

(적어도 내눈 앞에선) 싸그리 박멸 할 수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해충"들의 입장에서는 생존 자체의 문제가 된다. 그들은 우리들이 영화나 재미로 읽는 소설에서 일어나는

'세기말'을 하루가 멀다하고 맞이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  소설속에도 최루탄형 방충제 하나에 한 사회를 이루던 바퀴벌레 무리가

전멸을 했다. 크기만 작을 뿐, 인간보다 더 오래 생존한 생물계의 선배로서, 곤충들은 인간이 자신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적대적인 마음을 품고 있을것이 분명하다.         

 

소설은 그러한 곤충의 적대적인 마음을 그대로 소재로 사용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가 자신의 인생도 살짝 가미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인 인간으로선 자신이 입주 해야 할 보금자리에 바퀴벌레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 할수가 없고, 바퀴벌레 입장에선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는 하극상적인 이 현실을 인정 할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힘은 너무나도 막강하다. 그러나 종족의 번식과 생존을 위해선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는 영화에서 처럼 수많은 레이져와 함대, 날카로운 송곳니, 칼날같은 발톱이 난무하는 세상이 아니다.

주인공은 잘 안팔리는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한잔의 맥주를 이용해서 우울함과 현실의 어려움을 떨치려는 오늘날의

'아저씨"고 그를 상대하는 바퀴는 인간의 마음을 투명한다는 점에서는 특별하지만, 신체능력은 곤충 그대로인 변종 흰 바퀴벌레일

뿐이다.

 

그들은 한 집을 무대로 자신들의 신념과 고정관념을 위해서 싸운다. 

그러나 그들이 싸우면서 벌이는 각종 에피소드와 작가의 철학적 해학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은근히 미소짓게 하는 재미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가정집에서 벌이는 '스타쉽 트루퍼스' ... 아니 늑대왕 로보에 더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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