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목을 친 남자 - 프랑스혁명의 두 얼굴, 사형집행인의 고백
아다치 마사카쓰 지음, 최재혁 옮김 / 한권의책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은 그야말로 "번역서의 천국" 이다.

메이지시대부터, 외국문물을 일본의것 (자국의 것) 으로 바꾸는 행위, 특히 지식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겨난

번역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상당히 유용한 것이다. 

 

덕분에 일본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잡지식" 부터, 정밀하기 짝이 없는 전문 지식서까지, 모든 지식이 쏟아져 나온다.

이 책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지식을 담은 책에 해당하는 역사서이다.    왕의 목을 친 "사형 집행관"를 다룬 책이기는 하지만,

내용을 요약하면, 그저 프랑스 루이16세를 처형한 형 집행관 "샤를 샹송의" 개인적인 기록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1793년 1월2일 그에 의해서 집행된 1건의 사형집행은 당시 시대를 격변시킨 세계사적 사건이였다.

프랑스는 스스로 왕정을 잘라내고, 민중의 공화정을 수립했다.

 

이 기록을 남긴 샤를 앙리 샹송은 그 격변기의 역사 한가운데..그야말로 실행자의 위치에 있었으며, 그 때문에 이 기록은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나의 호기심과 지적 갈증을 풀어준 유용한 책이 되었다.   

 

[키로틴의 마금모꼴 칼날은 루이 16세가 제한한 디자인이였다 효울성은 원래 설계의 반달형 칼날보다 효과가 뛰어났다.]  

 

중세시대부터,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관, 도살자, 목욕관리관, 사냥꾼, 여성의사(산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도시

(공동체)에 소속되어 사는것이 불가능했다.   

 

교리에 반하여 사람을 죽이고, 자연물을 제어하고, 변형시키는 사람들은 "당시 시대"의 정서로 판단하면, 그야말로 부정한 인간이자,

하느님의 가르침을 져버린 이단자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였기에, 그들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없는 사람취급)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사는것도, 공동체에 속하는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교외에 머물며, 자신이 "특별한 신분" 임을

드러내는 표시를 해야했다.  그 전통은 샤를 앙리가 살았던 17세기가 되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는 왕권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는 "관리"의 신분이였고, 귀족만이 허락된 권리 (허리에 장검을 찰 수 있는 권리)를 행사 할 수 있었으며. 자체적으로 세금을

징수 할 수있는 권리까지 누렸지만, 인간으로서의 "인권"만은 허락받지 못했다.

 

그가 사는 집은 의무적으로 "사형 집행관" 이라는 표시(붉은 페인트)가 있어야 했고, 그의 아들은, 나라의 정식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을 부정한자 로 여겨 인간관계는 물론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민회의 투표권도, 공동체의 일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의 "신분제" 에 나름대로 저항했다.

 

그러나 그의 기록을 보면, 그는 장 로베르 피에르 같은 "급진적인" 혁명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가 행사하는 "정의의 철퇴"는 분명 왕권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리(의무)였다.  그는 분명히 왕이 임명한 "관리" 였고, 

모든 행동의 정당성은 신성불가침의 "왕권"에서 나오는 것이였기에, 그는 왕이 인정하기 시작한, 민회의독립, 인권의 강화, 즉

온건적인 "입헌 군주국" 으로의 변화를 긍정적인 눈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에게 루이16세는 현명하고, 냉철하며, 여색을 탐하지 않고, 오직 왕비에게 헌신하는 건전하고 이상적인 "군주"였다.

실제로 17세기 급진적인 계몽운동과, 제1.2계급의 부패가 덜했다면.. 그는 프랑스왕조의 "성군'으로서 손색이 없는 군주가 될수 있는

장점을 두루 지닌 인물이였지만, 역사는 그를 프랑스 왕조 "최후"의 왕이라는 상징적인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그는 최후에 "국민들이여 나는 죄없이 죽는다!" 는 말을 남겼다.    그의 진실된 심정이 우러나온 마지막 유언이 아닐수 없다.

 

샤를 앙리는 그 세기의 사형집행을 직접 집행했다.

책의 후반부에는 그야말로 영화같은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온건적 혁명을 기대한 그였지만, 이미 시대는 급진적인 혁명의 물결이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왕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스스로 왕의 목숨을 거두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는 왕의 처형식날 모든것을 걸었다. 그의 아들들은 그를 보좌하며, 왕을 구하기 위한 물밑공작을 수행했다.

일부로 왕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구경나온 사람들이 왕을 동정하게끔 유도하려고 했고, 소문으로 들은 왕당파 결사대

(왕을 구하기위해서 모여든 왕당파 3000명...실제로는 300명도 되지 않았다.) 가 들이닥칠 경우 은밀히 그들에게 협조해 왕을

도망 시킨다는 위험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구경꾼들은 왕의 죽음을 원했고, 결사대는 끝내 오지 않았기에

그는 결국 왕의 목을 잘라 내야 했다.

 

그는 일평생을 그때문에 괴로워 해야했다. 특히 기토틴의 등장은 그가 일평생 수행한 "의무"에 대한 의미를 빛바래게 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장인" 이였다. 사람의 목을 깔끔하게 그리고 고통없이 자르기 위해서는 수없는 실전과, 의학적 지식, 그리고

건장한 육체를 유지 해야 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기계" 가 발명되면서, 그의 역활은 그저 기계를 효과적으로 다루기만 하면

되었다.   왕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피의 광기는 계속되었다.  키로틴은 그야말로 효과적인 도살기계였다.

그가 과거 힘껏 노력해도 하루에 3~4명을 집행 하는데 비해,  키로틴은 하루에 수백,수천명의 목을 잘라냈다.  

 

오늘날 모두들, 프랑스 혁명은 "자유를 향한 민중의 몸부림" 아니면, 그들의 피로 인해서 생성된 민주주의의 의미..등을

따지면서, 프랑스 혁명을 높게 평가한다.  그들에게 루이16세는 혼군이며, 왕권은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은 순수악 으로서 인식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샤를 앙리 샹송은 그 시대를 "무의미한 피가 흐른 광기의 시대" 라고 표현했다.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성불가침의 왕권을 부여한 왕조의 교리 (카톨릭)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었다. 귀족은 물론, 왕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관리, 상인, 인물들, 모두가 처형대상이였다.  그의 기록에는 심지어는 귀족의 수발을 든 하녀라는 이유로 15살의

어린 소녀가 킬로틴에 서야 했던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그소녀는 담담하게 기계속에 목을 들이밀었고, 처형은 단 6~10초만에 끝났다.

모두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 같다.  하루에 수많은 피가 흐른다.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 그는 그의 기록에

혁명에 대한 회의를 적어넣었다.   광기의 시대.. 나는 그것을 접하는데, 이책은 그야말로 적절한 서적이다 라고 정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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