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언덕의 노래
김인수 지음 / 책을담다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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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벨 사하바'는 1만 3000년전의 선사시대의 집단 무덤으로서 처음 발굴되었을때는 최초의 인류가 자행한 대량학살의 증거로서 주목받았었다. 그러나 최근까지 진행되어진 연구 덕분에 기존의 인식과 달리, 해당 무덤 속의 인류는 한 순간 몰살당한 것이 아닌 오래도록 다른 공동체의 폭력 등에 노출되었고, 특히 그 공격의 수단 또한 단순한 조우전이 아니라 매복과 습격 등 복잡하고 또 체계적인 조직된 공격이었으며, 그 원인에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부족을 꼽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문명사회가 만들어진 이유에는 농경과 같은 집단의 노동력이 필요해진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연의 냉혹함과 짐승들의 습격, 또는 같은 인류의 폭력에 대항하여 뭉쳐 공동체를 이루어 그 크기를 더해 온 과정이 보다 중요하다 생각한다.

이에 이 책의 이야기 또한 인류 최초의 유인원의 시대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 오늘날의 지구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서, 현대시대와 선사시대 사이의 오랜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각자의 전쟁으로 인하여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가? 무엇보다 전쟁은 무엇때문에 일어나고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잔혹해지는가에 대하여 해당 책을 접하는 독자로 하여금 보다 전쟁이 지닌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는 것 같은 감상이 들게 만든다.

실제로 이야기 속의 부족들은 처음부터 미지의 공포나 본질적인 흉폭함으로 상대를 적대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들은 서로 간에 발생한 어느 '살인사건'의 본질을 (또는 진상을) 깨닫고 이에 그것이 사고에 가까운 불행임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후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는가' 에 대한 의견의 차이로 인하여 결국 두 부족은 서로의 정의로 인하여 상대를 적대하게 되는 딜레마를 떠안게 된다.

야르 족장은 무자비한 사람은 아니였다. 싸움으로 번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원칙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큰 난관이였다.

156쪽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흔히 함부라비법전이 떠오르는 위 정의를 부르짖는 부족에 대항하는 또 다른 정의... 이에 독자는 정의와 생명이라는 두개의 가치관이 대립하게 되는 상황과 이후 일어나는 전투를 바라보면서 전쟁이라는 수단이 동원되기까지 이를 막기 위한 수 많은 시도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상대의 부족에게 용서를 빌며 자신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루겠다고 했다. 더욱이 부족의 입장에서도 막대한 선물과 사죄를 표하며 상대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했지만, 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법으로 부족을 다스리던 상대 부족의 입장에서는 이는 자비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철칙에 예외를 두는 위험을 감수하라는 요구였기에, 그들 또한 쉽게 기존(스스로의)의 가치관을 바꾸는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똑 같이 아이의 생명을 내놔라" 라는 요구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은 시작되었다. 물론 소설 속에선 당시 역사에 걸맞에 전사들이 돌창을 들고 전장에 서고, 수도 몇 십에 불과한 오늘날의 시선에선 매우 원시적이고 작은 전쟁일지는 몰라도 서로의 가치관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를 지키키 위해 싸우는 전쟁의 본질은 오늘날과 비교해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인류 최초의 전쟁과, 오늘날 최첨단의 여러 수단이 동원되는 전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래 인간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느냐에 따라 전쟁이 발발하거나 또는 더욱 잔인해 질 수도 있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한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때도 많은 (힘 없는) 대중들은 '누가 정의로운가' 는 주제로 이분법적 사고에 틀어박혔고, 정작 힘 있는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구하며 전쟁의 양상을 이용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었다.

이에 저자는 내용 속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있다.

'전쟁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되지 않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시작되면 승리를 위해 무슨 짓이든 동원해야 한다. 라는 메시지가 나에게는 한때 군인이였던 저자가 전쟁을 어떠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보고 또 이해하게 되었다.

각설하고 전직 군인이였던 인물이 위의 '최초의 전쟁'을 주제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가? 는 의외로 분명하다 생각이 된다.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피해를 받고 있지만, 아직 전쟁의 주체가 되어 희생되거나 국민에게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르지는 않았다.

더욱이 통신장치의 발전 등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유튜브'나 여느 매체를 통해 드론과 공습 등에 피해를 당하는 군인들과 시민들의 모습을 마주하지만, 그것은 이전과 다른 전쟁의 기술과 순간 영상의 끔찍함에 놀란 것일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나' 는 이 순간 어디에서 전쟁이 발발하여도 여느 분쟁으로 치부하고 또 그에 의한 희생에도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전쟁을 지지하는 민중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은 없어야 한다" 는 것이 이전 세계대전을 치룬 어른들이 줄기차게 우리들에게 말해 온 교훈이였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 가르침을 잊고, 폭력에 익숙해진 또 다른 형태의 '위험한 대중'의 하나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이 글의 마지막을 고한다.

(...)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피할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악에 맞서 악을 행한다 해도 더 큰 악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감수해야 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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