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흔히 함부라비법전이 떠오르는 위 정의를 부르짖는 부족에 대항하는 또 다른 정의... 이에 독자는 정의와 생명이라는 두개의 가치관이 대립하게 되는 상황과 이후 일어나는 전투를 바라보면서 전쟁이라는 수단이 동원되기까지 이를 막기 위한 수 많은 시도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상대의 부족에게 용서를 빌며 자신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루겠다고 했다. 더욱이 부족의 입장에서도 막대한 선물과 사죄를 표하며 상대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했지만, 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법으로 부족을 다스리던 상대 부족의 입장에서는 이는 자비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철칙에 예외를 두는 위험을 감수하라는 요구였기에, 그들 또한 쉽게 기존(스스로의)의 가치관을 바꾸는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똑 같이 아이의 생명을 내놔라" 라는 요구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은 시작되었다. 물론 소설 속에선 당시 역사에 걸맞에 전사들이 돌창을 들고 전장에 서고, 수도 몇 십에 불과한 오늘날의 시선에선 매우 원시적이고 작은 전쟁일지는 몰라도 서로의 가치관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를 지키키 위해 싸우는 전쟁의 본질은 오늘날과 비교해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인류 최초의 전쟁과, 오늘날 최첨단의 여러 수단이 동원되는 전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래 인간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느냐에 따라 전쟁이 발발하거나 또는 더욱 잔인해 질 수도 있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한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때도 많은 (힘 없는) 대중들은 '누가 정의로운가' 는 주제로 이분법적 사고에 틀어박혔고, 정작 힘 있는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구하며 전쟁의 양상을 이용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었다.
이에 저자는 내용 속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있다.
'전쟁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되지 않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시작되면 승리를 위해 무슨 짓이든 동원해야 한다. 라는 메시지가 나에게는 한때 군인이였던 저자가 전쟁을 어떠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보고 또 이해하게 되었다.
각설하고 전직 군인이였던 인물이 위의 '최초의 전쟁'을 주제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가? 는 의외로 분명하다 생각이 된다.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피해를 받고 있지만, 아직 전쟁의 주체가 되어 희생되거나 국민에게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르지는 않았다.
더욱이 통신장치의 발전 등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유튜브'나 여느 매체를 통해 드론과 공습 등에 피해를 당하는 군인들과 시민들의 모습을 마주하지만, 그것은 이전과 다른 전쟁의 기술과 순간 영상의 끔찍함에 놀란 것일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나' 는 이 순간 어디에서 전쟁이 발발하여도 여느 분쟁으로 치부하고 또 그에 의한 희생에도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전쟁을 지지하는 민중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은 없어야 한다" 는 것이 이전 세계대전을 치룬 어른들이 줄기차게 우리들에게 말해 온 교훈이였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 가르침을 잊고, 폭력에 익숙해진 또 다른 형태의 '위험한 대중'의 하나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이 글의 마지막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