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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칼은 누구라 하느냐 - 소설 공민왕
류정식 지음 / 물병자리H / 2024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느 수 많은 역사의 해석중에서 (고려)'공민왕'은 흔히 개혁군주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당시의 고려가 원나라의 그늘 아래 제후국으로 취급받는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자주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행한 개혁 안팎의 실현은 분명 폭 넓은 고려의 역사 중에서 보다 (후대에)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의 사실만이 아닌 소설가의 상상을 더해 완성되는 '역사소설'의 경우에 소위 공민왕의 삶은 크게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져야 할까? 그도 그럴것이 위의 개혁 뿐만이 아니라, 이후 왕권강화를 위한 여러 시도에 있어서도 흔히 공민왕이 보여준 모습은 크게 앞서는 개혁가의 모습이 아닌, 음모와 숙청을 아울러 실행하는 정치가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때문에 최근 2024년 많은 사람들을 고려의 역사로 이끈 드라마 '고려거란전쟁'과 같은 분위기를 다시끔 이 책을 통해 만끽하려는 독자가 있다면? 안타깝게도 빠르게 해당 기대를 접는 것을 권장하는 바다.
실제로 작품의 첫부분에 표현되는 공민왕의 모습은 왕후 노국대장공주보다 못하다. 예를 들어 이후 역신이 되는 김용을 크게 중용하고 곁에 둔 것은 그가 지도자로서 신하를 평가하고, 이를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증명이고, 특히 홍건적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천거되는 유능한 장군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주변에 신임하는 권신들에게 군권을 부여한 것에는 그 아무리 외부의 군벌이 등장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였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국방과 정치적 이익이라는 두개의 가치를 두고 저울질했다는 점에 있어서 만큼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최소한 그는 어리석거나 오만하지 않았기에, 홍건적이 수도 개경을 점령하는 국가의 위기에도 끝까지 저항하였으며, 더욱이 스스로의 선택이 최악의 현실을 불러 왔다는 책임을 통감하여,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나라(백성)의 도움을 구하는 애통교지를 내린 사실 등은 결국 그가 위기의 대응과 이후 개혁이 실패했다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해당 공과 과의 경계에서 최소한 그가 역사적으로 '총명하고 어질며 백성들의 기대를 모았다는 평가' 를 받을 수 있게 한 나름의 증명이 되어 준다.
이처럼 소설 속 공민왕의 삶 또한 그의 반려이자 이해자인 노국공주와 함께하기까지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말 그대로 고려 왕조의 자주와 권위 뿐 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각설하고 솔직히 역사속에서 그가 개혁에 실패하고 이후 고려가 서서히 혼란속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안타깝다는 단순한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이야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신의 배반과 두번의 군사적 난, 더욱이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원나라의)기황후가 군대를 보내는 지경까지 극복했음에도, 어쩌면 노국공주의 사망을 계기로 공민왕은 비로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한계... 자신의 지긋지긋한 운명에 두 손을 든 것이 아니였을까? 물론 여느 위인들과 영웅, 성웅으로 불리우는 삶의 모습은 그 스스로에게 주어진 모든 시련을 마주해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이지만, 그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공민왕은 그 나름대로 주어진 '역사적 역활' 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진 안타까우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인물로 인식된다.
앞으로 나아가기에 너무 많은 걸림돌을 감내한 위인...
그야말로 고려의 변화를 위해서 밖에는 원나라를 경계하고, 안에는 왕권과 신하의 균형, 군벌의 성장을 경계하고, 심지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덕흥군과 같은 다른 왕족들을 경계하는 삶의 형태... 이와 같은 조건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고려의 공민왕의 삶은 형태는 자칫 외롭고 힘든 것 만이 아닌 (스스로) 무너지기 쉬운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