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크게 주인공의 인격을 만들어낸 가치 중 제일은 스스로에 대한 '자기 혐오'이다. 물론 그 혐오의 감정 가운데 주인공의 책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나치 정권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에서 부역하는 아버지를 두었고, 그저 독일 사회가 부르짖는 '질서'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유대인 친구를 대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립하여, 주변의 모든 진면모를 알게 되었을때, 과연 주인공의 입장에서 어떠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그는 부끄러움,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분노...그러나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복잡한 마음을 품고 이방인이 되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조국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그저 다시끔 주어진 프랑스인이라는 배를 타고 과거 그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동방의 나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전쟁은 그의 깊은 상처를 들쑤신다.
한국전쟁... 6.25를 직접 마주한 주인공. 종군기자로서 그의 눈에 들어 온 참상은 이미 과거 스스로가 겪은 경험과 뒤섞여 또 다른 상처를 준다. 더욱이 겨우 발견해 낸 삶의 이유이자 사랑인 한국인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이후 그는 이제 그의 내면에 남은 마지막 인격의 파편을 끄집어내, 그 형태로 세상과의 작별을 고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할복의 의미는 여느 일본인의 전통적 사상과 가치관과는 조금 다른 이유가 녹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개인의 입장에선 더 없는 절망을 맛보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으면서,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속죄의 마음을 과거 그가 이해한 가장 고결한 형태로 마무리 하지 않았나 한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미 언급했듯이 그 수 많은 속죄의 마음에서 주인공 스스로가 행한 잘못은 겐소쿠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뿐이다. 그는 전쟁의 시대 독일인으로서, 전범 부역자의 아들로서, 가족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버지로서 시대의 부조리함을 끌어안고 죽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결국 이를 이해한 사람들에게 온전히 판단을 맡기고 있다. 에밀 몽루아... 아니 볼프강 모리스 폰 슈페너 라는 인물은 왜 할복을 선택했나?
이에 나는 그 수단에는 나름의 의문을 품지만, 적어도 죽음을 선택한 이유 만큼은 크게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