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사전 Part 3 지옥사전 3
자크 콜랭 드 플랑시 지음, 장비안 옮김 / 닷텍스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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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보았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서양의 지옥에 대한 개념이 사전으로 정의할 만큼 방대할까?' 라는 의문이였다. 물론 다른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단테의 지옥'처럼 저자 스스로가 하나의 서사를 써 내려 간 것이 아니라면 여전히 지옥의 모습과 그 속의 구성은 과거와 오늘날 그다지 변한것이 없기에, 어쩌면 다른 독자들 또한 미리 (제목을 통해) 책의 내용을 유추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목과는 달리 저자가 써내려간 '사전적 의미'는 오늘날 고대의 가치관... 즉 신화시대의 학문과 종교, 또는 세계관처럼 매우 방대한 장르를 망라한 지식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 많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독자의 입장에 서서 이 책을 바라볼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저자 '자크 콜랭 드 플랑시'가 책을 지어낸 1818년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 속에서 저자를 지배해온 과거 신비에 대한 이해는 고대인과 근세인의 사이에서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대한 차이점을 구분하려 노력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옛 기독교의 가치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논리' 등이 대세를 이루던 시대! 이에 저자는 예전 시대의 가치관을 정리하여 '사전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했다. 예를 들어 고대의 불사조와 같은 미지의 생물에 대한 전설을 정리하고, 과거의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었던 물건이나 장소, 또는 주술의 방법이나 효과와 같은 지식을 기록하고 정의함으로서, 어쩌면 그 이전에는 지역과 사람에 따라 우후죽순 다른 모습을 보이던 무형적 가치를 나름 근세의 가치관 속에서 기록하고 정형화 한 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결별을 위해서가 아닌 '논리의 시대에 과거의 가치란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는 저자 나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나? 하는 감상이 든다.

신이 인간에게 준 존재의 존엄을 깨닫게 만든다면, 관상학은 불확실한 부분이 있음에도 존중 받을만하다. (...)누구나 선택과 취향에 따라 얼굴이나 신체 일부를 바꿀 수 있다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적으로나, 내외적으로나 완벽한 만족을 이루지 못한다. (...)

54쪽 관상학

예를 들어 신비주의가 지배적이였던 시대, 세상에 이해하기 힘든 불확실한 현상이 나타날 경우 인간은 크게 두가지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태양과 일식의 관계를 신화의 틀에 묶어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했던 (나름의) 이성적 모습을 보였던 예도 있으나, 최악의 경우에는 마녀 사냥처럼 인간과 그 공동체가 공포와 히스테릭으로 학살을 자행한 모모습 또한 심심치 않게 보여왔기에, 이후 저자가 살아가는 새로운 문화의 시대는 이전 알 수 없었던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실증적) 논리를 통해 억누르려는 시도를 했다.

덕분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영적이고 무형적인 신비주의적 가치관은 이른바 '점술과 미신'이라는 단어 아래 그 평가가 한정된다. 이제 현대인은 델포이의 신탁이 말하는 '운명'에 지배되지 않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저주'를 받아 병에 걸린다는 믿음을 품지 않으며, '사랑의 묘약(주술)'을 만들어 상대의 마음을 강탈하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여전히 인간은 어려울때 신에게 강한 도움 등을 구하고 있는 만큼...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보여지는 현대인의 인식 그 내면에는 과거에 비해 주술(또는 종교적 가치관)등이 나름의 효과(결과)를 이끌어내 낸다는 믿음은 미약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신적 의지를 잘라내지 못했다는 그 미묘한 경계가 그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새삼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가 아ㅣ닌가? 하는 생각이 ㅁㅣ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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