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그는 (소설의 이야기에 비추어) 조선의 변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화'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새롭게 대원군이 실세로 떠오르자, 나름 정통이 아닌 방계로서 부조리함을 경험한 그에게 큰 기대감을 품었으나, 안타깝게도 역사를 돌아보았을때, 대원군 이하응의 국정은 이후 쇄국으로 나아가기에, 결국 오경석은 그 스스로가 개화를 위해 오늘날 보기에 상당히 무모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실제로 비교적 세계정세를 파악했던 오경석이 개화를 주장했던 때는 1871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을때와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의 (협상의) 실무자로서 활약했을 때이다. 이때 대원군은 협상을 뒤집고 일본과의 결전을 지시하였으나, 정작 오경석은 조약을 통해 (다시)조선 개국의 문을 열었다. 물론 이후 벌어지는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사실을 이유로 이 주인공의 선택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날 역사에서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일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의 교두보가 되었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의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 변화는 필수라는 믿음을 가진 당시의 인물에게 있어서, 큰 마찰을 피하고 최대한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화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사상적 믿음'과 행동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 정의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조선의 변화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나? 이후 그의 사상적 계승자에 해당하는 김옥균의 갑신정변과 같이 급진 개화파가 행동하게 된 이유와 실패 등을 떠올려보게 되면... 결국 조선은 비록 느리고 낙후되었지만, 그 내부적 조직만큼은 강인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