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독일 프로이센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5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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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럽을 수놓은 다양한 왕실의 역사는 저마다의 국가 속 역사와 함께 엮기어 그 시작과 끝을 맺어왔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도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있는 반면, 과거 유명한 프랑스 부르봉 왕가와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왕가와 같은 시대의 변화에 의하여 군주로서의 역활과 더불어 가문의 종지부를 찍은 여러 사례를 통하여, 역사는 이를 비추어 단순히 하나의 가문의 종말, (또는 영향력의 소멸)만이 아닌 해당 사건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세계사적 성찰'을 마주하게 하는 기회를 가져다 준다.

이에 프로이센의 역사 또한 위에서 주장한 것과 같은 '성찰'을 마주하는 의의가 크다는 감상을 준다. 그도 그럴것이 오랜 분열의 역사를 뒤로하고 '독일 통일의 과업'을 달성한 공적과는 별개로 이후 마지막 빌헬름2세의 치세에 얼룩진 세계1차대전의 진행과 결과, 혹은 이후 왕조의 몰락과는 다르게 독일이 나아간 길을 생각하여 보면 결과적으로 왕실의 시대 속에서 만들어낸 프로이센 정신은 독일의 운명을 군국주의로 나아가게 한 나름의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프로이센이 보기에 폴란드의 쇠락은 자업자득이였다. (...) 반면교사가 됐다.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해도 기사도 정신만은 마음에 새기고 질실강건한 군인 군주가 다스리는 청렴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길임을 폴란드는 가르쳐주고 있었다.

23쪽

그러나 소위 '프로이센 정신'이 부르익어갈때의 과정을 살펴보게 되면, 결국 그 속에는 이제껏 프로이센이 걸어간 험난함이 드러난다. 소위 신성로마제국의 변경백에 불과한 호엔촐레른가에서 출발한 가문의 씨앗은 분명 풍족하고 거대한 영토를 양분삼아 성장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와는 다른 통치와 성장의 길을 강요했을 것이다. 이에 결과적으로 프로이센은 이러한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해왔다. 그 유명한 프리드리히2세의 시대에서 펼쳐진 왕위계승 전장과 같이 나름 '국가의 방향성'을 국방과 확장(또는 성장)으로 두고, 왕가와 귀족의 건전성을 유지한 국가는 그달리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프로이센 다운 것이라 이해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대왕은 맘껏 빈정거렸고 테레지아는 울먹였지만 취할 것은 확실히 취했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태도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절대군주가 보여야 할 모습이라는 것을 충분이 이해하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사람들의 가슴에 애국심과 자긍심을 남기고 국고를 과거의 5배로 늘려놓은후 1786년 영면했다.

93쪽

다만 이러한 (격동의) 통치는 지도자의 뛰어난 의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꽃을 피우는 법이다. 반면 능력을 벗어난 오만과 강대한 군사적 인상만을 과시하고자 했던 마지막 황제의 야심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몰락을 자초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주장한 '피와 강철'은 본래 과거의 프로이센의 성장을 주도했던 기조와 같은 가치였으나, 그와 비슷한 빌헬름2세가 꿈꾸어 온 강철과 전함은 반대로 그와 독일'국민'의 사이를 영원이 갈라놓았다. 과연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에는 어떠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에 나는 국가의 정책이란 단순히 일관된 방향성만이 아닌, 시대의 요구에 부흥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또는 국가의 (절대)지도자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것을 우선하기에 앞서 국민의 커다란 증오를 사는 것을 두려워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망명15년째에 (...) 평상복을 찍은 빌헬름2세의 사진이 있다. (...) 회상록을 집필하고 손님을 접대하며 취미인 장작 패기에 열중하면서도 여전히 왕정 부활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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