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애너벨 앱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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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그 시대의 숙녀로서 '사회에서 어떠한 지위를 지녔는가?' 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분명 이 소설의 내용은 당시 시대상의 많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크게 두 명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일라이저 액턴' 과 '앤'은 분명 서로가 지니는 지위 등은 다르지만, 적어도 저택내에서 '요리를 향한 열정'을 공유하는 만큼 서로가 애정을 나누는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에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떠나, 사회적인 지위 등에 눈을 돌리게 되면 분명 많은 이들은 당시 산업혁명기의 영국의 시대상, 또는 아직 중세와 근대적 가치가 혼합되어져 이어지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결국 시인이자 요리인의 영혼을 지닌 미스 일라이저 또한 오롯이 자신의 글과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어렵지 않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첫번째 시를 만나자 손가락으로 한 단어씩 짚으면서, 입술을 달싹이며 읽는다. 몇 초 지나서야 단어들의 뜻에 충격을 받고 놀라고 당황스러워 얼른 책을 덮는다. (...) 지독한 고뇌가 어려서 차마 읽을 수 없다. (...) 당황스럽다. 미스 일라이저는 누구나 원하는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닌가. (...)

245쪽

때문에 두 인물에게 있어서 '요리'란 단순한 행동이 아닌, 맞딱뜨린 현실을 피해 오롯이 충실한 만족감 등을 느낄수 있는 행위이자, 또는 스스로가 선택한 사회적 역활로서 미래에 대한 자아실현을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리인의 길 또는 요리연구가이자 출판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역시 가혹하다. 무엇보다 몰락한 가문을 부흥시키기 위해 일라이저를 '결혼' 시키려는 어머니의 끈질긴 집념은 보다 개인의 가치와 자주적인 삶을 선택하려 하는 일라이저의 바램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시대적 가치로서, 순히 서로간의 감정과 관계가 악화되는 것만이 아닌 둘이 생각하는 '사회적 역활' 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시대상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일라이저가 생각하는 '가장 대중적인 요리책을 출판하겠다.' 는 목표도 그의 열혈한 이해자인 하녀 '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가치있는 것이 되지 못했다. 물론 책이 완성되어 출판된 이후 영국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완성 이전에 겪었던 무관심과 냉소 등은 분명 그 길을 걸어 나아겠다고 다짐한 일라이저에게 있어서 가장 외롭고도 힘겨운 나날을 선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생명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 부모가 출산을 계획하듯 나도 책의 출간 계획을 세워야 한다. (...) 동생은 내가 결혼의 기쁨이나 가족의 축복을 누리지 못할 걸 알기에 노처녀의 처지를 동정하리라. (...) -영원히- 반쪽자리 여인으로 살 테니. 혹은 그보다도 못한 처지일테니. 그저 여인의 망령으로.

322~324쪽

과연 그 시대에 대중을 위한 요리가 등장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대중의 입맛에 걸맞는 요리가 아닌, (과거) 중세의 요리, 귀족의 요리, 파티용 요리 즉 보다 과한 재료와 향신료들이 낭비되는 이전시대의 요리와 길을 달리 하는 현실적인 요리법의 등장을 의미한다. 실제로 과거 영국의 숙녀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몰락과) 수치로 여기고, 반대로 보석과 드레스를 두른 '가문의 여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결과, 적어도 이 책의 내용에 따르자면, 당시의 여성들은 적어도 과거 부엌의 지배자라는 지위에서 스스로 물러나 '타국의 맛'에 길들여지고, 또한 영국 요리의 발전과 가능성을 소멸시킨 장본인들이 되었다.

각설하고 역사적으로 '일자이저 액턴' 이 그 시대에 어떠한 '혁신'을 불러왔는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이 소설에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저자는 그러한 결과 이전에, 비교적 소외되고 또 사회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선택을 하고, 이를 실현시킨 해당 인물의 삶을 그리면서, 보다 많은 이들이 사회적 요구에 종속되는 삶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여 하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야망과 열정의 삶'을 선택하기를 바란 것 같은 감상을 받는다.


(...)제가 해야 될 일들이 있는 걸 깨달았어요. (...) 아르놋 부인으로서는 못하지만 일라이저 액턴으로는 할 수 있는 일들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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