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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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리 등장하지는 않지만 과거 많은 매체에서 보여주었던 '서부시대'는 그 나름의 메시지가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현재의 미국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찬가... 즉 프런티어를 확장한 사람들의 도전과 감내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거친 자연환경과 전염병, 그리고 적대적인 원주민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서부로 향하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또 정착한 이후로도 악착같은 삶을 이어가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이미지를 그린 소설이라면 지금도 다른 여러 작품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나, 허나 의외로 현대적인 감각으로 쓰여진 작품을 찾으라고 한다면 나는 결국 이 책을 권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각설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격인 인물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커다란 갈등 지닌 인물'로 생각 할 수 있다. 그는 백인 이민자의 가족에게서 길러졌지만, 태생은 원주민이다. 때문에 그는 가족 의외에 다른 공동체에게 있어서, 크게 혐오되는 존재는 아니라 해도 그리 환영받는 존재 또한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대체로 독립적인 기질을 보여준다. 그저 자신이 가진 당나귀를 부리는 법, 교배를 시키는 노하우를 무기로 그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대가를 받고 그 이상의 관계를 이어가지는 않는다.

저는 누구의 대변인도 되지 않을 겁니다. 저는 대위님의 말씀만 전달할 거에요.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거고요. 그리고 나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대위님께 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125쪽

허나 그러한 인물이 사랑을 하자, 자신만을 위한 세계 대신에 또 다른 세계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민자의 무리와 정착민과의 관계, 또는 백인을 보호하는 군인들과 이들의 팽창이 두렵고 불만스러운 여러 원주민 부족들... 물론 그러한 배경이 남녀와의 사랑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이제 스스로만이 아닌 '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곧 자신이 선 여러 경계선 사이에서도 나름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선택의 길을 걸어가며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는 대체로 비극에 가깝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민자의 무리로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위협에 희생되는 길이자, 반대로 저항해야 하는 거친 삶의 연속이다. 허나 여전히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이 이어져 맞이하게 된 오늘날... 이에 그들의 후손에 해당하는 입장에서 과연 이 소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 뿐일까? 아니면 한국인에게 있어 '국제시장'이 있는 것처럼 한 시대를 표현한 미국의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이야기일까. 이에 그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내가 자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길 원하나?"

"저는 누가 그래준다면 좋겠습니다." (...)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양쪽 강둑으로 다리를 뻗고 있는지도 몰라."(...)

"어제의 땅과 내일의 땅에 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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