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 마리아 - 혁명을 삼킨 불굴의 왕비
헨리에타 헤인즈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2년 9월
평점 :
절판


프랑스 브루봉 왕가의 일원이자 성군으로 칭송받은 앙리4세의 후손으로서... 분명 '앙리에트 마리'의 인생은 그 고귀한 혈통에 걸맞는 화려함이 더해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이였던 찰스1세는 소위 영국 내전을 거치며, 의회파에 의하여 처형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에 생각해보면 그녀의 삶에 거쳐 보여지는 사건들은 이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프랑스 혁명과 닮아있다. 비록 그녀 스스로가 유럽대륙(프랑스)로 도망쳐 (소위) 비운의 왕비가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전 이후 맞이한 잉글랜드가 공화제를 통한 입헌주의의 사상을 채택하고 또 발전시키려 했다는 것은 분명 현대 '민중의 지배'가 중요해진 '세계의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때도 국민의 불만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하지 못했고, 감당하지 못할 조건만 걸지 않으면 왕이 스코틀랜드를 위협하도록 (...) 평소에도 자주 착각하던 그녀는 이번에도 그랬다.

201쪽

실제로 당시 시대를 주름잡았던 '유능한 인물'을 꼽아보면, 왕비 헨리에타의 존재는 더욱 더 좁아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 리슐리외 추기경,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등 이들이 움직인 유럽의 역사와 업적은 매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단순히 세계와 국가 그리고 신민(지식층을 포함한)의 변화와 같은 '시대의 요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위기에 휩쓸려 우왕자왕했던 왕과 왕비의 존재는 적어도 정치적 입장에 있어선 '무가치한 존재'로도 치부될 수 있다 생각된다.

사실 왕족 부부는 의논할 바가 많았다. 대륙의 상황 변화를 신중히 고려하면서, 떨어져 있을 때 잠시도 나태하지 않은 채 일을 어떻게 끝났는지 서로에게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243쪽

허나 그것이 온전히 왕실 부부의 가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카톨릭과 잉글랜드의 성공회라는 믿음의 차이점을 극복하는 것에도 그 나름의 곤란과 갈등을 거쳐야 한다. 이에 이들 부부는 보다 점진적으로 개인과 왕실이라는 두개의 차이를 묶고 봉합하는데는 성공했다. 이에 이전의 시대였다면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에 있어 불행이였던 것은 단순히 영국 뿐만이 아닌, 유럽대륙 대부분이 '전쟁'을 통한 새로운 문화의 유입이 이루어졌고, 더욱이 그 문화와 제도에서 발생하는 균열과 차별 그리고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또 조정해야 하는 역활에 대하여, 당시 많은 지도자들이 (아직)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있다.

당시 유럽의 30년 전쟁이 만들어낸 현상... 이는 유럽의 전쟁으로 보다 효과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정치적 의식을 깨우쳐 돌아온 사람들이 아직 느슨한 연합왕국으로서, 이후 군사력의 변화와 문화적 통합을 통해 서로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알력이 드러나던 영국의 환경 속에서 (정치와 군사) 본래의 신분을 뛰어넘는 역활을 하도록 부추켰다.

이에 이 책의 주인공 헨리에타 마리아는 과거 어느 왕족이 실행하지 못했던 위기를 맞이해, 보다 근면하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이에 그 행동이 왕과 왕실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쳤는가, 그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어리석음을 반복했는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기나긴 오늘날 후손들의 이해에서 비쳐진 일종의 결론에 불과하다. 적어도 이들은 그들의 지위와 생명 그리고 미래를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그 패자의 노력을 단순히 잘못과 무가치로 치부하지 않는 정서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현대의 다양한 역사를 마주하고자 하는 진보된 활동으로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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