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당연하게도 조선은 당시 거대한 세력을 이루려는 청나라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바라보았고, 또 나름의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다. 실제로 조선이 '북방의 방어'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면. 어찌 인조 스스로가 철옹성?인 남한산성에 들어가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노력이 결과적으로 홍타이지의 침략의지를 막아낼 수 있었는가? 또는 발발한 전쟁을 보다 유리하게 수행할 수 있는 조건중 하나가 되어주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역시나 그 해답은 부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청나라의 성장과 그 위협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했고, 또 그러한 인식 등으로 발발되어진 전쟁의 흐름 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전쟁)지휘와 통제에 있어서도 '지도자'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야말로 무의미한 탁상공론과 근거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전쟁을 이어가는 와중 실질적으로 청에 저항하고 또 희생되어가는 존재는 최전선의 군인들과 힘없는 백성이였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조 스스로가 치욕을 당하는 순간 오늘날 뿐 만이 아니라 아마 당시 많은 사람들도 이를 '인과응보'와 비슷한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심지어 이후 조선의 국가 지도자로서 인조의 역활, 그리고 전쟁과 전황을 통제하고 지휘해야 하는 조정과 군대의 역할이 청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또 그것에 비추어 '지금 조선에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그들 스스로 던져 반성하거나 수정(또는 수많은 실행과 시행착오 무엇보다 경험!을 축척) 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후 조선이 걸어온 기나긴 길을 생각해보면 과연 조선의 역동성... 아니 조선의 자주적인 성장과 발전을 저해한 최대의 요소는 주변의 강대국보다 먼저 그들 스스로 (필요이상으로) 집착한 '조선의 근본주의' 그 자체의 존재가 아니였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