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열쇠 - 역사에서 지워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
브라이언 무라레스쿠 지음, 박중서 옮김, 한동일 감수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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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소위 '현대인의 인식에 부합하는 종교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이에 생각해보면 종교의 모습에는 크게 두가지 형태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자격(또는 지위)을 가진 자들이 무녀와 신관 등에 한정되는 경우에는 결국 신전이라는 한정된 장소, 수행과 신탁이라는 독특한 행위 등이 신과 인간의 사이의 '신성'을 부여한다. (또는 연결점이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결국 사회의 독특한 역활을 수행하는 신분으로서 종교는 그 나름의 지위를 온전하게 누리는 하나의 세력이 될 수 있었으나, 이미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소위 전통적 종교의 모습에는 이와 같은 '관료제적 성격을 가진 종교'와는 다른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해 왔다.

실제로 이 책이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크게 약물을 이용한 '영적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무녀 '피티아'의 경우는 신과의 접점을 이루기 위하여 화산 가스를 흡입했다. 그러나 그 이전의 보다 원초적인 종교적 제의에 빠지지 않는 음료 '맥주와 포도주' 또한 넓은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술에 취하는 행위... 또는 신체적 정신적 중독상태에 빠지는 것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것이기에, 결국 (주제인) 종교적 황홀경에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주제는 어디까지나 '약물을 통한 종교적 환희'다. 즉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전통적 발효음료와 맥각과 같은 자연적 환각물질을 통해 '정신을 흐리게 한 것은' 크게 개인적 행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신과의 만남'이다.

때문에 그들의 제의는 신성한 장소도, 또는 자격을 지닌 신관도 필요치 않다. 그저 인간의 영혼과 그에 대한 매개체(약물)만 있다면 그 장소와 집단은 커다란 무아지경 속에서 신과 죽음 모두를 아우르는 신성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세월동안 현대인들은 과거 사람들이 이러한 '자연적 약물'이 인체에 어쩌한 영향을 미치는지 '크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이해했다. 그야말로 인체에 미치는 중독상태를 설명할 때, 과거 인류가 크게 신비라는 종교적 해석을 부여한 것에 대하여, 그 바탕에 인간의 무지(아는 것이 없다)가 있었다고 정의한 것이다.

약리학의 진정한 비밀은 약랑학이다. (...) 이것이야말로 고전학자 루스 스코델의 말마따나 "슬픔을 억제하는 약물"일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성분을 더 많이 복용한다면 의료용 포도주는 금세 환각성 포도주로 변모한다(...) 그리스인이 포도주에 약물을 첨가했을 뿐 아니라 복용량에 대해서도 예리한 눈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확증이다. (...) 예수 이후로도 여러 세기 이어져 5세기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 까지 지속되었다.

321쪽 불멸의 약물

그러나 이 책은 오랜 원시 문명 뿐만이 아니라,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으로 이어진 '약물의 종교적 사용'이 보다 약물의 높은 이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신비제로 이해되는 디오디소스 축제 등이 가져온 의의는 고대 특권계층이나 종교적 신비를 독점한 계층을 벗어나, 보다 대중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운 형태의 의례 또는 종교적 신비를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는 반대로 오늘날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저자의 주장은 크게 '역사의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아니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중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현대인의 상식에 이 주장이 크게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방문명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기독교는 일찍이 '약물의 환희'를 엄격히 부정하여 왔다. 그도 그럴것이 앞서 언급한 엄격한 종교적 교리와 관료적 체제를 완성한 기독교가 그밖의 종교적 의식 뿐만이 아닌, 인내와 수행을 벗어난 전통적 쾌락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에 저자는 고대 무아지경에 이르는 신성과 마법, 즉 인체와 정신을 자극한 신비의 의식 등이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거쳐 초기 기독교 문화의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디오니소스의 생살과 피를 섭취하고 그의 환영적 포도주를 맛보았을 때 입문자들은 심오한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가족과 국가와 로마 사회 전반에 대한 모든 의무를 잊도록, 딱 한 잔만 마시면 불멸을 맞이할 수 있는 야외로(...)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탄생하는 방식이기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번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관료제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423쪽 영원의넥타르를 마시고

그러나 이에 만에 하나 초기 기독교가 '디오니소스의 정신' 즉 자유와 해방, 종교적 쾌락을 통해 입문자들을 늘리고 또 번성했다 할지라도, 결국 오늘날 이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실제로 이후 관료적 체제를 완성하고, 또 오늘날에도 이러지는 (새로운) 신성의 의미를 확립한 종교를 만들어내기까지... 그야말로 기독교가 과거 옛 행위를 청산하기 위해 행한 역사적 사실은 말 그대로 '약물과의 단절'이라 해도 과연이 아니다. 실제로 과거 고대의 무녀들은 환각과 쾌락 또는 고통을 멈추는 약물을 조제하고 유통하는 소위 '의학의 주체'가 되어왔지만, 이후 기독교 사회에서는 마녀로 내몰려 학살당하는 운명을 맞이하지 않았나?

이러한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진 이후, 그리고 오늘날까지 해당 종교의 대의가 살아있는 현 상황에서, 기독교 또한 스스로의 신성을 증명하는 행위로서, 고대의 전통적 행위, 즉 광범위한 약물을 활용했다는 주장은 분명 불쾌하고 또 해당 종교의 신성(또는 정체성) 을 모독하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허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는 고대 문화와 해당 기술(약학 등)을 단절시킨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흡수하여 독점하고 또 활용한 존재이다. 물론 현대 이러한 주장이 얼마만큼 증명되고, 또 인정받을 수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역사적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갈 경우, 미래의 수정된 역사의 상식선에서 보다 자유로운 종교의 해석? 을 마주할 수 있기를 내심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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