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대 트로이 전쟁을 무대로 한 문학 작품 '일리아드'는 오늘날 서양 문명과 문화, 또는 문학의 정수로서 칭송받고 있다. 그야말로 이 호메로스의 작품을 통하여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서사시'가 써내려가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또한 필멸자인 인간이 보다 높은 수준의 자아... 예를 들어 영웅으로서 요구받는 긍지와 자존감을 위해 행동하지만, 끝내 죽음앞에 스러지는 과정을 통해, 그 삶과 운명의 공허함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것이 위의 이야기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일리아드에는 다양한 영웅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 또한 고대 그리스신화 등을 장식하는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가장 뛰어난 전사중 하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전통적인 등장인물이 묘사하는 영웅서사시와는 다른 '시대 속 또 다른 인물들의 눈높이'에서 트로이전쟁을 해석한다. 그야말로 전쟁의 와중 전리품이라는 이름으로 유린되어진 여성들을 통해서 (고대) 전쟁을 바라본 것이다.

물론 고대의 '승자의 권리'를 포함하여,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되어진 인물들은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2004년 영화 트로이에서도 아킬레우스는 원정 도중 아폴론신전의 신관이였던 여성 '브리세이스'를 노예로 삼는다. 그렇기에 이 책의 내용과 비교해보았을때 전체적인 내용은 앞선 영화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단 하나 영화가 이들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넣었다면 소설은 그저 '분노와 '절망' 특히 '단념'의 감정을 보다 크게 드러냈다.

리르네소스 노예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부엌데기에 지나지 않았던 한 소녀는 이제 위대한 군주의 첩이 되었다. 반면 그녀의 주인이였던, 오랜 세월 출산하며 배가 처진 평범한 여자는 (...) 이제는 젊음과 아름다움, 생식능력만이 중요했다.

66쪽

실제로 전쟁에서 패배한 도시, 그리고 전쟁의 와중 저항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절멸당하는 남자들과, 필요에 의해 노예가 된 여성들 사이에는 분명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드러날지 모른다. 그러나 노예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이 책 속에 드러난 성노예와 다름이 없는 삶의 연속을 통하여, 여성들 스스로가 느낄 참담함을 과연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어떠한 감정으로 마주해야 하는가... 결국 그러한 질문 앞에서 소설 속 줄거리는 크게 충격적이고 또 커다란 불편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현대인들은 그러한 절망을 애써 외면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대중문학을 통해 인권유린과 폭력을 마주한다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애써 마주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야만을 인정하거나 묵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오늘날 현대적 인본주의가 등장하고 정착된 이유에는 앞서 드러난 역사 속의 야만을 들여다보고 또 그것을 수정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마주하며, 독자들이 자칫 단순히 과거의 야만, 또는 전통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머물러 온 성별과 계급 등을 나누어 그 실체를 '고발하기 위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해당 역사가 정의하려는 (시대상) '영웅적인 행동' 뒤에 희생되어진 사람들... 더 나아가 힘의 논리 아래 짓눌려 살해되거나 노예가 되어버린 다수의 희생자들을 마주하여, 이에 그러한 이야기가 한낮 옛날 이야기가 아닌,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는 위험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또 그러한야만에 대한 경계가 (오늘날에도)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로서, 그 감상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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