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경험주의자가 악마 '비온데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가 욕심 또는 악마의 마법(또는 이익)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아니며, 더욱이 그가 종교적으로 타락했기 때문도 아니다. 실제로 작품 속 비온데타의 모습은 오늘날 남성이 보아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녀는 (초기 근대의 가치로서) 일편단심, 알바로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반대로 사랑의 열정 또한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처음 알 수 없는 정체 때문에 거리를 두었던 알바로였지만, 점차 그녀의 변함없는 모습 등을 목격함으로서,이후 진정 마음으로 우러난 사랑으로 대하기에 이른다.
이때 비온데타가 악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는 그 어떠한 악마보다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그녀는 한 사내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없는 희생을 치루었다. 결국 한 사내를 얻기까지의 과정에서 그녀가 필요로 했던 것은 악마가 가진 미지의 힘(마법?)이 아니라, 그녀의 집요한 심리적 충격... 즉 '밀고 당기기' 이였다.
이처럼 근대의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크게 인간의 감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비온데타는 끝없이 알바로의 사랑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얻었을때, 알바로가 행하고자 한 사회적 행동, 즉 부모의 허락과 결혼에 대한 행위를 부정하며, '그것이 인간 본연의 감정보다 앞서는가?' 라고 되묻는다.
이때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타락은 그 사회적 행동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감정에 '인간이 지배되는 것' 이 아닐까? 특히 이 소설 속에서 비온데타가 '가련한 여성'의 탈을 벗어던질때, 즉 악마 본연의 모습을 보였을때를 생각해보면 결국 그 이면에는 (순간)쾌락을 제어하지 못한 알바로라는 인물이 있었다. 물론 소설은 그 이후 알바로가 겪은 모든 상황, 더군다나 비온데타의 존재마저도 실존했는가? 라는 모호함으로 얼버부렸지만, 결국 이 책이 표현하는 문장 속에는 근대 독자들이 생각했던 쾌락의 형태, 특히 지위와 재산 또는 고결한 인간성의 갑옷을 둘러 미쳐 마음 속으로 삼켜야 했던 '가장 원초적의 쾌락'의 모습이 드러난다.
치명적인 매력, 그리고 모든 것을 잃는 나락과 같은 쾌락... 심지어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 가치관은 이른바 '금단'이라 불리운다. 이때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이를 실제가 아닌 가상으로 만든 컨텐츠로 접하며, 일종의 욕망의 배출구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이, 그 당시 사람들 또한 보다 인간의 감정에 솔직해지기? 위하여 또는 그 배출구를 통하여 추악함을 엿보거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하여 '환상문학'을 만들어 소비하였다면...? 결국 이 또한 근대의 '청소년 관람불가'로서 나름의 매력(특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