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 - 중세의‘화려한 반역아’,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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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를 마무리 했다는 만족감! 그러나 나는 그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감에 앞서, 나 스스로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에 대하여 한번쯤 풀어놓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아주 오래전 학생시절,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나름) 비평한 바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에 나는 어떠한 기준으로 이러한 자기주장을 펼 수 있었을까?

이에 어쩌면 그 오만함 속에는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역사의 진실'... 그리고 전문가와 학자들에 의해 정립된 확고한 지식만이 오롯이 '정답'이라는 옛 사고방식에 기대었던 탓이 크다. 허나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 그 역사적 견애는 보다 진보하고 또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이에 현대의 지성에는 '역사는 이야기' 라는 해석을 더해 그 이야기 속에서 진실의 근사값을 발견하는 과정을 이른바 '역사에 접근하고 또 탐구하는 방법'으로서 크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저자의 드라마틱하고, 또 인간미가 넘치는 문장 또한 생각해보면 보다 역사를 표현하는 저자의 개성이라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옛 로마인 이야기를 지나 이탈리아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수 많은 저서를 집필한 저자 역시도 그 스스로를 갈고 닦아왔기에, 이에 최근의 저서라 할 수 있는 이 프리드리히2세의 이야기는 결국 저마다의 비평과 반성을 보완한 가장 정교한? 내용으로서 다듬어 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게 하기 충분했다.

그 둘이 살아온 13세기의 이탈리아에서 대두되고 있던 신흥 세력은 '기도하는 사람' 이나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였다. 1백 년 뒤에 찾아오는 르네상스 초기 시민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이다.

상권 377쪽

각설하고 저자가 스스로 '반드시 써보고 싶다'라고 말한 인물, 그리고 저자가 정의한 바에 의하면 르네상스와 계몽의 시대를 열어 근.현대의 사회에서 또한 당연시 되는 '정교분리'를 실행하려 한 인물로서, 군주 프리드리히2세의 생예와 업적 등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엿보는데 있어서, 특히 그의 인물과 사상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형성)과정 또한 중요하지만, 결국 그가 무엇때문에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려 하였는가? 그리고 어린시절 고아가 되어, 로마 카톨릭의 후원과 보호를 받은 연약한 (세력)시절을 벗어던지고, 또한 그저 시칠리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그의 정당한 통치권을 확립하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닌 '이단'과 '파면'이라는 강압을 견디면서까지 진행하려 한 그 개혁의 의지와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이에 이 책은 분명 의미있는 해답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줄것이다.

실제로 과거 카노사의 굴욕을 기점으로 굳어진 '그리스도의 지상왕국'은 유럽사 뿐만이 아닌, 세계사에 있어서도 수 많은 흔적을 남긴다. 이에 예를 들어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에서 표현되는 수도사들의 생활,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의 생활상 뿐 만이 아닌 그 정신적인 억압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옛 그리스 로마의 지식을 넘어, 인간으로서 당연한 해학적 감정까지 봉인하려 한 된 '종교의 힘'(또는 역활)은 분명 오늘날 추구하고자 하는 바와 큰 거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중세 유럽을 뒤흔든 교황과 황제의 항쟁은 '카노사의 굴욕'에서 시작해 -중략- '정교분리'가 당연히 여겨지는 현대에 이르는데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쳐야 했다.

하권 213쪽

이에 '해방'이라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원하는 것을 쟁취 한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비록 인물 프리드리히2세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이 황제로서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였다 하여도, 결국 종교의 이름으로 독점하고 또 억압하고 있었던 것을 분리시키고 또 독립시킴으로서 만들어낸 결과는 이후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는 씨앗이 되었다. 특히 천상을 떠나 지상의 지배를 위한 법을 공표하고, 대학을 지었으며 스스로가 이성과 실용의 유용함을 이해하였기에, 학문과 과학의 영역에도 관대했다는 사실은 분명 나에게 있어서도 큰 공감을 가질 수 있었던 업적둘이다.

바로 이러한 인물이기에, 이후 중세의 끝을 장식하려는 저자가 그 새로운 시작점으로서 프리드리히2세를 선택하여 한 것은 분명 정확한 것이였다 생각된다. 물론 이 인물이 이후 계몽주의로 진행되는 역사의 진보에 있어 얼마만큼의 역활을 했는가에 대하여는 (역사학자들) 저마다의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 역활 가운데서 저자가 '선구자'라 주장한 부분에 있어서 크게 긍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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