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 푸틴의 첫 위기, 그리고 러시아 해군의 가장 암울했던 시간, 영화 <쿠르스크> 원작
로버트 무어 지음, 이동훈 옮김 / 울력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가장 은밀한 탈 것으로 인식되는 잠수함의 특징, 그리고 굳이 해당 '냉전시대'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군의 전략무기로서 기능하는 원자력 잠수함이라는 위치(지위)에서 생각해본다고 한다면? 어쩌면 이 구르스크의 사고는 그 비극적을 만들어낸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서 보여지는 것 뿐만이 아닌, 이에 대한 대처와 마무리에 이르는 나름 국가와 인간의 눈높이에 대한 많은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고 생각이 된다.

실제로 이 원자력 잠수함의 침몰로 인하여, 당시 러시아 뿐만이 아닌 극동지역의 주변 국가와 심지어 라이벌관계인 '서방국가들'까지 포함하여 각 국가의 정보교환 (또는 실질적 협력)그리고 외교적 영역의 교류 등이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분명 그 영향력은 단순한 해양사고를 넘어서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불구하고, 당시 러시아 내의 피해자들과 타국의 해군, 그리고 해양전문가에 이르는 수 많은 사람들이 원인을 넘어 생명과 구조를 외치는 것과는 별개로 안타깝게도 이후 흘러가는 상황은 '극비'를 최우선 가치로 삼은 러시아의 주도로 인하여 매우 민감하면서도 지지부진한 그 모순된 움직임이 쿠르스크의 희망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러시아는 이전에도 '쿠르스크'보다 더 사소한 것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킨 적이 많다. 그리고 '쿠르스크'함은 118명의 생명을 실은 배 이상의 의미가 있다.

186쪽 "쿠르스크함은 어선이 아니다"

이처럼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당시 러시아가 지키고자 했던 최우선의 가치에는 승무원의 생명에 앞서 '러시아의 기술'이 있었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실제로 구조를 명목으로 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그 순간부터 러시아는 침몰한 잠수함의 외관 뿐만이 아니라, 그 내면의 무기와 기기, 심지어는 탈출해치의 메커니즘조차도 기밀의 이유로 적극적인 공유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 국가 지도자들은 야망과 자존심의 덫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러시아의 가장 귀중한 자산은 잠수함의 비밀이나 국가 지도자들의 체면이 아니라 젊은 승조원들의 생명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말았다.

339쪽

이때 그러한 비협력과 충돌의 이면에 있어서, 어쩌면 여느 독자들은 (러시아) 특유의 '생명 경시'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현상과 풍조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를 풀어가기에는 나 스스로의 식견이 모자라기에 자중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부가 지키고자 한 대상과, 지도자의 입장에 서서 국민을 마주한 자세, 그리고 이후 사회.정치적 흐름으로 본 수 많은 현상을 지켜보면 분명 현대에 (적어도 대한민국에서의) 주문되어지는 규명과 반성 그리고 책임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 쿠르스크라는 단어에는 망각이라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지 않은가 하는 감상이 든다.

각설하고 정작 쿠르스크의 사고를 통하여 가장 근본적인 교훈을 추구한 것은 해당 러시아가 아닌 외국의 다른 사람들이다. 예들 들어 이 책의 저자 뿐만이 아닌 '베스트셀러'로서 관심을 가진 영국, 그리고 적어도 출판물로서 이렇게 한글판을 받아들게 된 현실에 있어서 '해양사고에 대처해야 하는 방법' 그리고 '사고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필요성에 주목하는 것은 분명 보다 폭 넓은 자유의 환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비록 과거의 과오와 잊고싶은 비극이라 할 지라도 나는 해당 (오늘날)의 러시아도 이 '현상'에 크게 공감했으면 한다. 아니... 적어도 이제 국가의 체면과 긍지를 '강철에서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고 여긴다. 때문에 한때 기밀과 은폐 그리고 외면으로서 '나라의 안정을 지킬 수 있다' 믿어 왔다면? 이에 쿠르스크는 그 생각의 종언을 고하는 가장 아픈 기억이자 단어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한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진보가 과연 러시아에 정착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적어도 '나'스스로의 지식으로선 감히 장담하지 못하겠다. 다만 적어도 오늘날 '해양사고'에 대한 인식을 투영한 감상으로서, 나는 이 관심이 좀더 전세계에 있어 상식의 영역에 안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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