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그러한 비협력과 충돌의 이면에 있어서, 어쩌면 여느 독자들은 (러시아) 특유의 '생명 경시'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현상과 풍조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를 풀어가기에는 나 스스로의 식견이 모자라기에 자중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부가 지키고자 한 대상과, 지도자의 입장에 서서 국민을 마주한 자세, 그리고 이후 사회.정치적 흐름으로 본 수 많은 현상을 지켜보면 분명 현대에 (적어도 대한민국에서의) 주문되어지는 규명과 반성 그리고 책임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 쿠르스크라는 단어에는 망각이라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지 않은가 하는 감상이 든다.
각설하고 정작 쿠르스크의 사고를 통하여 가장 근본적인 교훈을 추구한 것은 해당 러시아가 아닌 외국의 다른 사람들이다. 예들 들어 이 책의 저자 뿐만이 아닌 '베스트셀러'로서 관심을 가진 영국, 그리고 적어도 출판물로서 이렇게 한글판을 받아들게 된 현실에 있어서 '해양사고에 대처해야 하는 방법' 그리고 '사고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필요성에 주목하는 것은 분명 보다 폭 넓은 자유의 환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비록 과거의 과오와 잊고싶은 비극이라 할 지라도 나는 해당 (오늘날)의 러시아도 이 '현상'에 크게 공감했으면 한다. 아니... 적어도 이제 국가의 체면과 긍지를 '강철에서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고 여긴다. 때문에 한때 기밀과 은폐 그리고 외면으로서 '나라의 안정을 지킬 수 있다' 믿어 왔다면? 이에 쿠르스크는 그 생각의 종언을 고하는 가장 아픈 기억이자 단어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한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진보가 과연 러시아에 정착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적어도 '나'스스로의 지식으로선 감히 장담하지 못하겠다. 다만 적어도 오늘날 '해양사고'에 대한 인식을 투영한 감상으로서, 나는 이 관심이 좀더 전세계에 있어 상식의 영역에 안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