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위의 '공원 조 씨' 가운데서 가족이 오지 않은 이유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난 탓이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들이닥친 사고와 죽음 가운데서, 그 등장인물과 연관된 비극(사고와의)의 접점은 그 어디에도 없다. '평소에 무언가 잘못을 했나?' '전생에 천벌받을 짓을 한걸까?' 근데 왜 나였지? 혹 이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이 소설에서도 그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부조리의 모습을 통해서, 이에 국가와 사회의 측면에서의 해결책 뿐 만이 아닌 인간으로서 바꿀 수 있는 부분과 그 한계에 대한 질문을 어쩌먼 저자 나름대로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그러한 감상을 받는다. 이른바 과거 흔히 안정과 질서와 번영을 쫒는 와중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사회는 위법과 부실이라는 당시 압축성장의 그림자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비평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그 과거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의 주제로서 이 소설에 활용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활용 너머에 많은 독자들과 그 세대들간의 (기억과) 문제의식이 줄어들거나 단절되는 순간. 결국 이 시대의 비극은 이후 또 다른 이름표를 달고, 이후 먼 미래에서도 반복되는 악순환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