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서운 설산 가운데 추락한 캠핑가, 아니면 바다 한 가운데서 침몰한 선박... 이처럼 세상에는 고립과 난파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맞서서 생존한 많은 실화들이 전해진다. 물론 개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소설과 영화 등의 소재로서 끝임없이 표현되는 이유에는? 어쩌면 그 극한의 환경 속에서 피어난 인간미나 (반대의) 도덕적 딜레마를 마주하며, 그 '인간'이란 주제에 대해 끝임없는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때로 누군가는 냉정함을 넘어, 냉혈한 사람이 된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그 상황(또는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인물... 또는 목격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고로 죽은 주인공'(영혼)을 등장시킨다. 그야말로 춥고, 배고프고,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등의 공포와는 무관하지만, 정작 이들의 불행에 크게 공감하고 아파할 수 있는 존재로서, 어쩌면 주인공000는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육체를 초월한 대가로, 진실을 마주한다. 실제로 사고 이후 여러 선택이 있었고, 이후 희생 또한 있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 이 '기적의 생환'을 감사해했고, 또 열광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당하고, 또한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인000가 보여준 리더십과 헌신이 결실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이후 영웅적인 미담으로 소개된다. 물론 이후 그 결과로 인하여, 각각의 생존자들의 삶은 변화했다. 너무나도 혹독한 추위 속에서 괴사한 신체를 잘라내고, 멋대로 산 속을 해매다 죽을 뻔하고, 끝까지 캠핑카 속에서 버티다 구조된 그 다양한 형태의 선택 이후... 세상과 사람들은 이들을 각각 동정과 연민, 그리고 영웅이라는 다양한 틀에 비추어 본다.

물론 주변의 연민과 도움, 공감 또한 큰 힘이 될때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주인공의 눈에 들어온 가족과 이웃... 그야말로 사고의 당사자들은 외면 뿐만이 아닌, 내면 그 깊숙한 곳에 숨겨진 '진짜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진실을 접한 유령은 거짓된 영웅, 가식적인 영웅의 존재를 알기에 더더욱 큰 분노를 느낀다. 이에 어쩌면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 비스킷 한조각, 작은 불씨 하나, 더욱이 약자를 구슬러 장갑 한 켤레를 빼앗는 행위는 그 어떠한 악행보다 더 잔인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후 과거 둘도없는 친분을 이어온 이웃, 유능하고 매력적이였던 한 인물의 추락을 마주하며, 이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당시 (주인공의) 가족 뿐만이 아닌, 독자로서의 '나'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였다. (물론 큰 불쾌감도 함께)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소설의 주제가 그저 '잘못' 과 '징벌'에 있지 않다고 본다. 물론 딜레마에 대한 고뇌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주인공만큼은 그저 몸에 상처가 나면 딱지가 앉듯이 서서히, 그러나 결코 예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상처를 안고도 살아가야 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이 최소한 평생 슬픔과 절망 속에서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어느 한 영혼과, 그 가족이였던 생존자들 이 모두가 어제 보다는 내일, 점차 서로의 아픈 기억을 지워가며 살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어쩌면 이 책의 진짜 주제 (또는 의의)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