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여느 작품들을 접하다보면, (그 속에서) 어느 작가와 장르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의 경우에는 (미스터리) 추리소설로서 분류가 되어지며, 특히 책 표지의 소개글에도 보여진 것과 같이, 저자는 과거 추리소설의 왕도를 닦은 '문호'들의 뒤를 이어, 보다 옛 감성(또는 문체)을 표현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위 21세기형 아가사 크리스티를 꿈꾼다.
이처럼 소설 속 이야기의 무대, 그리고 그 속의 등장인물들을 비추어보면, 분명 과거의 영국과 일본의 추리소설에서 마주했던 가장 익숙한 형태가 드러난다. 더욱이 시작에서부터 피의자으로부터 '강한 부정'과 '억울함'이 묻어나는 편지가 보여주듯이 역시나 이 살인사건 또한 단순한 잔인성 뿐만이 아닌, (어떠한)석연치 않은 파편이 존재하기에 이에 독자는 그 결과를 마주하기까지 기나긴 (주인공의)옛 기억을 더듬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책 속에는 추리소설로서 당연히 등장해야 하는 해결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어느 사건의 해결을 위해 동원되는 수사관과 탐정의 존재가 없이, 이 책은 오롯이 진실을 주장하는 피의자의 기억과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이에 독자로서인 '나' 또한 오롯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해석되어진 장소와 인물, 특히 인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감정 등을 받아들이며, 이른바 제3자가 아닌 주인공의 입장에 보다 몰입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