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득 죽음이라는 단어를 마주하자 든 생각이 있다. 실제로 나 스스로가 '수집'이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이후 남겨질 그 많은 물품 중에 (특히) 어떠한 것이 나의 삶을 증명하는 것이 되어줄까? 예를 들어 지금도 높은 가치를 지니는 물건이 이후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투자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나의 메모와 장서인(도장)이 찍힌 낡고 닳은 책 한권, 그리고 그 한켠에 끼워져 있는 네잎클로버 하나에 이르기까지 이에 어쩌면 그 책 한권이 여느 금화보다 더 '나'로서의 색을 더 잘 간직하고 또 전해줄 수 있는 아이템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친다.

그러나 문제는 나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정의를 내리고, 또 준비하는 과정을 겪은 것과는 달리, 세상에는 죽음 직전까지도 자신 스스로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또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에 있다. 그야말로 죽음 이후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에 더해 어쩔 수 없는 사고와 죽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계승할 무언가를 후대에 전하지 못하고 차츰 망각 속에서 스러진다.

이처럼 이 책 속의 '침묵 박물관' 에도 그 소설 배경속의 인물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죽음 이후의 '유산'을 수집하고 전시하려는 목적을 공유하며, 차츰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박물관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것을 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어쩌면 이 둘은 같은 '외지인'의 경계에 서서 침묵 박물관이 만즐어져야 하는 이유와 목적에 있어, 그 많은 부분에 대한 의문과 정당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공통점은 유품이라는 단어뿐이였다.

299쪽

그도 그럴것이 배경이 된 마을은 단순히 폐쇄적이기도 하지만, 최근까지도 공동체의 관습법이 남아 '역사적으로' 독특하고 끔찍한? 행태의 기억이(또는 그 잔재가) 남아 있다. 때문에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뢰인'은 그 역사를 보존하는 시도를 넘어서, 보다 더 광적이고 집착적인 모습... 예를 들어 (해당)모든 죽음의 상징을 수집하고 전시하려는 열망을 강요?하며, 심지어 주인공에게 침입과 절도를 주문하기에 이른다.

때문에 이에 정상적인 인물이라면, 그 강요를 거절하고 또 그 박물관의 존재의의 또한 부정하는것이 옳을 것이나, 어째서인지 주인공은 그 주인과 소녀, 그리고 주변인물의 묘한 열정과 목표에 감화되며, 삶의 증거물을 수집하고 또 정리하려한다.

그렇기에 결국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서 보다 많은 죽음의 형태를 엿보게 된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에서도 스스로 죽음 이후를 대비하고 또 정리한 깨끗한 죽음따위는 극 소수에 불과하다. 반대로 바로 어제까지 최선과 최하의 삶을 살다가 죽은 사람들... 그야말로 마을의 명사로서 죽은 사람과, 뒷골목의 그림자 속에서 스러지듯 사라진 죽음의 모습은 분명 그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드러나지만, 반대로 죽음 앞에서는 같을 수 있다는 감상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일까? 결국 매춘부의 피임링에서, (표면적으로)존경받던 의사의 수술도구, 그리고 어느 살인사건 속 죽음을 상징 할 수 있는 증거물에 이르기까지 그 수집과 전시 그리고 그 와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개요는 곧 '삶의 증명'으로 압축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망자가 살았던 증거물로서의 유품으로서, 그리고 그 유품을 모아서, 정리하고 전시함을 삶의 목표로 전환한 주인공의 행동 이 이모저모의 최종적 종착지는 결국 죽음을 망각 속에 던져넣지 않겠다는 산 자들의 집념과 집착 그리고 삐뚤어진 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때문에 이 집착이 만들어낸 박물관의 모습은 분명 (전시품으로 판단하면) 초라함의 극치 이겠지만, 반대로 그 스토리와 정신적 가치로 접근해보자면 간신히 고대 이집트의 정신세계와, 근.현대의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예술미의 경계를 오고가는 형태를 지닐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것이 침묵 박물관이란 흔히 죽음에 대한 의문과 탐구, 그리고 망자에 대한 예의와 추억의 장으로 만들어진 학술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반대로 그 박물관은 그저 '인양선'에 가깝다. 흔히 죽음의 바다에 침몰한 인생의 배... 그 표류물을 탐욕스럽게? 모아온 것에 대하여, 어쩌면 주인공은 그 탐욕에 번호을 붙이고, 장부를 정리하고, 보기좋게 나열한 단순한 실행자이자 (나름의) 이해자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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