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느끼는 것이기는 하지만, 보다 담백한 정리를 추구하는 영국과 독일 등의 역사와는 다르게, 예의 프랑스의 역사적 표현은... 정말로 감각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서양사에 있어서, 넓은 들판과 초원이 가지는 가치는 분명 단순한 역사적 사실 뿐만이 아닌, 그 고유의 농업과 축산업의 발달과정, 그리고 보다 자연을 이용하고자 했던 여러 사람들(민족)간의 서로 독특한 가치관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양인의 고기와 치즈의 소비가 많은 이유, 그리고 고대와 중세에 보다 중장갑을 추구하며 (기사들) 평야전?을 수행했던 그 많은 전쟁사의 모습 역시 위의 초원의 존재 (또는 지형적 특징) 이 그 밑바탕이 되어 왔을 것이 분명하지만? 역시나 본래 밑거름이란 그 중요성에 비해서 그다지 주목받기 못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이렇게 '잡초가 자라나는 땅'이 가지는 가치과 그 역사를 돌아본다는 시도 또한 어쩌면 '매우 당연하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끔 돌아보게 하려는 저자 나름의 주장과 의도가 있지 않은가 한다.
실제로 이 책 속에 드러난 '풀의 향기' 그야말로 프랑스의 많은 예술가들과 문학가 그리고 위인들의 기록 속에 남아있는 초원의 존재란 결국 그 유럽인들의 노스텔지어를 상징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들은 소위 푸른 벨벳의 감촉을 기억하고, 그것에 몸을 누이며, 더욱이 풀 냄새의 싱그로움을 기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억 속의 자연과 옛 기록 속의 초원을 대신해 등장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초원'의 모습은 적어도 저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잡초들이 어울려진 작은 자연의 집합이 아닌, 치밀한 계획과 구획이 나누어진 인공물이 되어, 분명 옛 초원이 가진 많은 장점을 잃어버린 것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