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무궁화 - 국가상징 바로잡기
강효백 지음, 김원웅 감수 / 이담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나 또한) 학창시절 학습해 온 지식,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시의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공동체로서 공유해 온 그 어느것들이... 결국 그 오랜시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 일부 수정되거나, 특히 그 지식의 본질 자체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 인식되고 또 수정된 것들도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단 한번도 외침을 한 적이 없는 평화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분명 한국인의 (일부)기질을 상징하는 장점으로 이해되었지만, 결국 오랜시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과거 식민지배의 밑에서 주장된 일본의 주장, 즉 식민사관의 줄기에서 살아남은 관점으로서 이해되고 또 사장되었다.

때문에 이에 역사의 인식이란 점차 연구되어 밝혀진 어느 것에 대한 주장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고, 더욱이 사회(국민)의 합의를 거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허나 바로 그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장하는 것! 특히 엄격한 수정을 요구하는 내용으로서 받아들이기에 정말로 세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가 "바꾸자" 주장하는 것은 정말로 대한민국인으로서 당연하게 생각해 온 상식이다. 그리고 또한 국민으로서 뭉치게 해준 하나의 구심점이였고, 긍지의 산물이였으며, 더욱이 애국가의 가사로서도 줄기차게 불러온 이름이였기에, 이에 "무궁화는 나라꽃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내용은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 또한 파격을 넘어서, 때론 불신의 주장으로서도 이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친다.

때문에 지금까지의 '책 속의 주장'은 한 인물이자 연구가로서 주장되는 가설이라 이해가 된다. 실제로 저자는 무궁화가 나라꽃의 지위에 오르게 된 과정 뿐만이 아니라, 오래전 한반도의 긴 역사 속에서 민족과 문화 다방면에서 무궁화가 언급되는 연결점을 찾으려고 했으나, 결국 그 점이 미흡하다(또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한다. 이에 반대로 저자는 무궁화가 도리어 일본에 자생되는 식물이 된 것과 함께 일본국의 형성과정에서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결국 '일제시대의 그늘아래' 한반도 또한 무궁화를 특별한 꽃으로 받아들이고, 또 이를 (독립 이후에도) 문제제기 없이 그대로 내리받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뿐만이 아니라, 식민사관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국내 역사학의 태만 또한 꼬집는 내용이 된다. 물론! 그 비평의 내용에도... 특히 과거 일본의 (예를 들어 오다가문의 상징을 묘사한 부분) 역사를 표현한 단편적인 내용 여기저기에서 비추어지는 오류때문에 결국 독자로서, 오롯이 이 책을 신뢰한다 주장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저자가 국민과 역사를 향해서 (강력한) 문제제기를 한 것은 비단 저자 스스로의 믿음과 정의 뿐만이 아닌, 결국 민족이 자립하기 위한 과정중에서 소홀한 '어느 것' 그리고 이를 미처 수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저자 나름의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기에 결국 이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이를 기초로 앞으로 어떠한 학문의 연구가 진행되는가? 국민사이에서 어떠한 토론이 진행되는가에 따라서,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상식은 크게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반래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논점이 격화되면 될수록 그 과정은 극심한 진통을 겪고, 또 여러가지 갈등 또한 드러날 수도 있는 위험성이 드러난다. 때문에 이러한 진통을 마땅이 겪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결국 독자 또한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과 각오를 다져야 한다. 과연 변할것이냐, 그리고 변한 것이 정의와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있을것이냐... 이에 그 모든 것을 다져가야 할 주체는 바로 대한민국과 한국인들 모두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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