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
리처드 플레처 지음, 박흥식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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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십자군 전쟁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을 접하였을때, 이에 (당시의)저자는 어떠한 주장을 드러냈다. "서양은 중동이 허락한 것만을 먹으며 자라는 굶주린 늑대와 같았다" 이는 풀이하자면 중동이 동방과 서양의 중간지점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무역을 중계하고, 교역품을 독점하며, 그 필요성에 목마른 서방에게 있어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또 그것을 마음껏 휘둘렀다는 말이된다.

물론 위와같은 해석이 역사의 관점에 있어서 완전히 틀리다고는 주장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후 등장한 소수의 사람들과 같이 그 부족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론으로서 십자군의 정의가 합리화된다면? 적어도 나의 입장에서는 그 현상이 매우 우려스럽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 "가증스럽다" 라는 생각을 품는다.

각설하고 흔히 많은 사람들은 '중세시대'의 동 서양을 논할때 갈등과 충돌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충돌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에는 그 무엇이 필요한가? 결국 상호간의 교류... 일종의 접촉이 있어지만 우정이든 우호이든 오해이든 그 어떠한 것이 피어나지 않겠는가. 이때 이 책은 그 교류의 흐름 속에서,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접촉'(전쟁)으로 치닫기까지의 과정을 드러낸 일종의 역사서이다. 이처럼 책 속에는 고대부터 (로마제국)연결되어온 실크로드와 그 흐름사이에서 전파된 문화.지식.갈등 등의 가치관이 그 어느 순간부터 경직되고 또 축소되어지는가?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드러낸다.

두 문명의 이질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의아스러운 점은 양측 모두 상대 문명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113쪽

이에 상식에 준하여 생각해본다면? 그 가장 큰 이유에는 언제나 '유일신 사상' 즉 종교가 떠오른다. 실제로 십자가와 초승달, 성경과 코란 사이의 갈등은 과거나 지금이나 깊고 어둡다. 다만! 그 결과와 상식에 가려져 과정을 등한시하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고대부터 파생된 유일신 사상과 그로 인하여 분리되어 발전한 두개의 신앙에 있어서, 과연 그 시대에서도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오롯이 배척하기만 했을까? 이때 결과론을 드러내자면 서로간의 접점은 신앙이 아닌 일상이 이루어냈다. 그야말로 유럽인과 사라센인... 이른바 000민족이라는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확립되기 이전의 세상 속에서, 분명 종교는 확실한 집단의 (정신적) 울타리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로 그 경계에서 벗어나 이익을 취해야 할 순간이 올때, 사람들은 생각외로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보다는 생활과 교류에서 얻어 낼 수있는 장점을 취하기 위한 선택을 곧 잘했다.

그 덕분에 당시 이슬람 문화권의 '포용력'은 고대 그리스와 견주어 손색이 없는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의학과 천문학 등에 대한 비약적인 발전을 자랑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등장하게 된 '절대적인 가치관'은 곧 그 절대를 제외한 다른 가치관을 눈여겨볼 기회를 박탈했고, 박해했으며, 더욱이 기존에 쌓아올렸던 업적을 모두 쇠퇴시키는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특히! 더 불행했던 것은 그 배척의 현상과 움직임이 결국 이슬람과 기독교... 그 모든 영향력 아래에서 발생되었으며, 또 확대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흔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상식, 이에 서로간의 무지가 곧 전쟁(십자군)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겠다. 분명 이후 서로간의 교류와 왕래, 특히! 인종과 종교의 다름으로 인하여,발생하는 트러블은 그 서로의 증오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어 갔을 것이다. 다만 과거 우르바노2세가 열혈이 원정을 주문하던 당시에 있어서도, 분명 사람들의 뇌리에는 단순히 영혼의 구원 뿐만이 아닌, 중동에서 얻어 낼 수 있는 (다양한) 이익이 그 뇌리를 지배했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적어도 예전부터 교류를 이어왔던 '이탈리아 상인'들은 더욱 더 그 과실에 욕심이 동하지 않았겠는가?

이처럼 교류의 단절(또는 축소)가 가져온 역사적 불행은 어마어마하다. 더욱이 이에 서로간의 포용성과 다름을 이해하고 또 연구할 가능성조차 묵살한 '절대적 영향력' (종교)는 아쉽게도 그 시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피의 역사의 형성과 과정... 그리고 오늘날까지 남아버린 끝없는 갈등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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