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대 그리스를 생각하면 떠오는 것! 이에 철학, 민주주의, 광장, 민중이라는 단어와 함께 그 모두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적용 되는 것이 있다. 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웅변 또는 연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토론도 함께)
그러나 연설이 가진 순기능이 아닌, 또 다른 일면, 이에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치가 드러낸 그 많은 가치중에서, 혹여 그 중 '추악한 일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그 대표적인 예로서 (플라톤 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꼽고자 한다. 그도 그럴것이 기록 속에서 표현된 재판의 모습,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궤변론자) 사이에서 오고 간 토론의 기록을 가만히 접하고 있으면, 분명 그 속에서는 '현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어느 개념이 반드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예를 들어 출판의 보급, 영상물의 전파와 기록, 더욱이 정치가 보다 넓은 의미의 국민을 대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필요해진 조건들 중에는 분명 '설득을 위한 보다 명확한 기준'과 '사실성' (팩트)이 필수적이다. 이때!적어도 명확한 기준이라 하면, 재판에 있어서는 법률이 그 바탕이 되어야 마땅하며, 이에 각 의견과 주장을 견주는 척도에 있어서도 그 바탕을 초월 할 수 없다... 라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진 상식의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당시 '소크라테스가 건강한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주장에 대하여, 소피스트가 민중(재판에 참여한 청중)에게 미친 그 영향력 가운데선 적어도 근. 현대적 의미의 논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느 주장을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를 직접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 책이 아닌 다른 '설득의 기술'에는 오롯이 그 주 무대를 이루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더욱 더 중요한 가치로서 인정받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그러한 '야바위' 와는 다르게, 논증에 필요한 구심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연설가가 주제와 환경에 걸맞는 개연성을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정리가 그 무엇보다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