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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숲의 모습과, 또는 스스로 그 속에 걸어들어가 바라보는 풍경은 분명 그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독특한 경치를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도 바로 위와 같은 이치를 접목시킨다면? 결국에는 제3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그 여느 상대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나름의 '마음'에 대하여, 쉽게 알 길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버린다.
이처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의 관계 또한 바로 그 '베일 속에 가려진 내면' 그 알 수없는 마음에 좌지우지되는 보다 관능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이야기를 떠난 (나)독자의 입장에 있어서도 남.녀가 가져야할 관계 속에서 과연 그 무엇을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수 많은 상식들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인데, 물론! 그러한 감상과는 다르게, 세상 스스로에게 솔직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복잡한 사회성에 꽉 막힌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의미의 가치를 발견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결국 이들의 모습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딱히 설명하기 힘들다. 그야말로 일본사회 안에서, 비교적 가장 고요하고 고된 삶을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에게 있어서, 도쿄의 한 인물이 가져온 파동은 마치 퍼져나가듯 그 모든 인물들에게 나름의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 저자는 소위 '이끌림'에 대한 가장 비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드러내, 이를 독자에게 있어서 '자극'으로서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이에 결론적으로 이 모든것에 대한 결말이 어떠할지에 대하여는 (나스스로) 가급적 언급을 피하려고 하지만, 단 하나! 그 과정에 대한 묘사없이는 이 글이 이어질 수 없기에, 조금이나마 이들 인물들이 가진 나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에 앞서,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자극'으로 표현했다. 그도 그럴것이 흔히 성인의 남.녀의 일상에 있어서, 이 가상의 이야기나, 현실속의 인식이나, 모두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직접적인 접촉을 가장 자주 언급하고는 하는데, 그러나 먼 과거와는 다르게 오늘날 그 접촉의 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그 가치에 있어서는 분명 예전과는 다른 보다 광범위한 성격이 개입하고 만다.
아니...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더이상 '몸과 마음을 다 주는 사랑' 이란 적어도 저자의 마음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소설 속 인연의 결속과 그 흐름에 있어서, 제각각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치관은 사뭇 '막장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오랜 시간과 헌신에 대한 긍정적인 것은 적어도 사랑의 이끌림에 대하여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주지 않는다. 그저 좋은사람이여서는 만족되지 못하는 무언가... 반대로 순간 만났을 뿐이지만, 그리고 헤어진 아내에게 한켠의 마음을 두고 있는 불안하기만 한 남자이지만, 결국 어느이는 그러한 남자의 품에 안기고, 또 삶을 나누는데 있어서, 큰 결심을 굳이는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속의 자유분방함, 그리고 외로움과 죄악감의 토대는 바로 사랑이라는 가치였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아니러니하다. 흔히 세상 속 사랑이란 보다 애절하고, 아름답고, 또 나름의 영원성을 가지는 가치라 할 만했지만? 반대로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비추어진 세상 속 사랑의 모습은 때로 이 소설과 같은 죄악감을 품은 일그러진 형태를 띄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