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예수 - 이슬람, 공존과 평화를 위한 기도
타리프 칼리디 지음, 정혜성.이중민 옮김, 박현도 감수 / 소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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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관계를 생각해볼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대립'을 생각한다.   그

도 그럴것이 이 두 종교에 의하여 발생된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라 하면, 가장 먼저 십자군이

떠오르지 않은가?    이처럼 과거 이 두세력은 서로 상반된 문명과 인식 그리고 종교관을 이유

로 발생된 악행을 정당화했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 두 세력의 종교는 마치

물과 기름과 같다 인식되기에 이르렀지만,  이에 적어도 이 책의 정의에 따르면, 이 둘의 종교

는 소위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 '신성'의 뿌리는 하나였다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두 종교가 발생된 '중동'지역에 대한 이해와, 이 두개의

종교가 역사적으로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의 확인이

다.    허나 분명하게 재확인하지만, 이 책은 종교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역사학적인 가치로 접

근하는 책이 아닌, 순수한 종교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내

용은 각각 독자의 환경에 따라서 가장 인정할 수 없는 것이거나, 가장 편협한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생각이 된다.   


이때 '종교가 없는' 스스로의 감상을 말하자면 내용이 매우 논리적이고 신선하다는 것이였

다.   분명 저자는 순수한 신성이 사라지고, 또 통합과 분열에 의하여 두 종교 스스로가 개성을

낳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기독교가 이슬람의 믿음보다 후대에 등장했다는 그 주장

에 대해서도, 이를 상대의 정당성을 훼손하거나, 비하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이해의 첫

걸음으로 삼아야 한다는 '관용'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크루세이더' 와 '지하드'는 각각의 정의와 종교관을

방패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중동은 아직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고통받고 있으

며, 심지어 외곡된 정의와 보복의 이름 아래 동.서양 곳곳에서 비참하고 무차별적인 테러와 살

상행위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때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은 그 테러를 혐오하는 동시에,이

슬람에 대한 혐오의 감정도 함께 품고있다.     그렇기에 한국은 이슬람을 오해하고 있다...라

고 주장하고 싶지만, 나 역시도 이 주장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도그럴것이 나 또

한 이슬람을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고대와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많은

종교.이론의 책을 들여다보았지만, 이에 이슬람의 지분은 너무나도 적어서 그냥 백지라 해

도 좋을 정도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나름 소중하다.


이 책은 이슬람과 기독교가 하나였던 시절, 그리고 점차 두개로 나뉘어지던 시절로 나뉘어 그

달라진 해석이 낳은 '가치'에 대한 정의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 책이 가장 드러내려고 하

는 것도 독자에게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사람이 종교를 믿으면서, 독단

적이고 또 광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종교가 하나의 가치를 강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는 절대적인 신성아래 평안과 구원을 약속한다.   그렇기에 그 신성이 회손되는 그 무엇에

대하여 그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이 책은 종교의 불필요함이 아닌 진실된

'신성'을 이해하는 책이다.    비록 오늘날 서로가 앙숙이 되고, 적으로서 마주하지만, 세상에

이해와 관용의 가치가 살아있는 이상, 이 오해는 노력하기에 따라 극복할 수도 있다.    바로

그때, 이 책은 하나의 정의를 세우는 내용이 되어 줄수도 있지 않을까?    용서, 관용, 믿음 

이것이야 말로 이들이 말하는 휼륭한 선지자가 말했던 가장 소중한 가치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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