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너는 나의 용기
우태현 지음 / 새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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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적, 너는 나의 용기

임화의 시(九月 十二日 一九四五年, 또다시 네거리에서)에서 따온 『적, 너는 나의 용기』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소설이자, 식민지 해방과 남북분단과 전쟁 이후에 한국 현대사에 얽히고설켜 있는 정치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임화의 시들은 혁명의 대오를 정비하려는 가슴 저미도록 비장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임화라는 시인 자체가 소설 속에 묘사한 것처럼 시대가 그대로 하나의 인물로 육화된 존재로써, 시와 혁명, 전향과 속죄, 참전, 그리고 미제의 간첩이란 죄목으로 처형되는 것까지 이 소설의 중심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고, 범인이 사용하는 가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그림들은 카프문학전집 2권 김기진 전집의 표지에 박힌 그림인데 로댕의 ‘지옥의 문’ 위에 놓인 세 사람의 ‘망령’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단테의 지옥편에서 소개한 ‘슬픔의 도시’와 ‘영원한 비탄’과 ‘망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446P) 역시 이 소설에서 담고자 했던 뒤집어엎으려 했던 세상에 대한 절규와 절망을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살인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치밀하고 생동감있는 묘사는 잘 만들어진 CIS 영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스릴있고 긴장감을 주고 있다. 특히 사체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법의학적 소견, 범죄현장에 남겨진 글귀와 그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탄탄한 구성과 암시는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열정과 치밀함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형균의 생각을 묘사한 ‘붉은 충성, 붉은 수첩과 깃발, 위대한 수령의 초상화, 위수남청. 지난날 그들이 청춘을 온전하게 살면서까지 추종했던 혁명이념 중의 하나. 그러나 차단과 통제의 그늘에서 은밀하게 자라야만 했던 불완전한 사유. 분단으로 그 실존을 확인하지 못한 채 오직 추측과 희박한 근거로만 성장했던 불구적 사상, 분단의 질곡이 낳은 또 다른 파시즘 혹은 異種 볼세이즘! 그것에 대한 열망 아니었던가? 그 사상의 모태인 공화국이 이미 붕괴의 일로를 걷고 있기에 지금은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비겁한 관념이 되어 버렸다. 화려하고 축복받은 통일족구의 미래와 지도자로부터의 충만한 사랑을 경외하는 경전 속 신앙과 같은 그 사상도 이미 말라비틀어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지금 여기에서 처형의 이유가 되고 있을까?’(414P) 부분에서 살인의 의도와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 않나 한다. 소설적 구성과 이야기 전개가 흥미진지하여 단숨에 읽어 내려갔지만 살인 동기와 단서를 추적하면서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논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386세대들이 고민하고 겪어야 했던 아픔과 열정 그리고 의문들을 주인공인 형균과 백시우와의 대화에서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에게 수령은 어떤 존재입니까?”

“괴물이지 ---.”

“지울 수 없는 나의 회한이라지 않았나? 이제는 모두 부정해 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내 과거의 가장 짙은 그늘이고. 그 시대를 지나온 우리에게는 치유가 꼭 필요한 상처 같은 것이지. 만들어진 우상. 남조선이 갖고 있는 계급과 모순을 그 ‘위대한 수령’이 혁명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란 환상에서 비롯된 것들 말이야! 사리 난 이념보다 힘을 믿는 사람이었네.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추상보다 색깔과 선을 더 중요시하지. 그 때는 총칼로 수천명을 학살하고 집권한 악랄한 파시스트 군부정권, 그들과 결탁한 부패한 재벌,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이 모순덩어리 자본주의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어. 그 일사불란한 힘을 수령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결코 가능하지 않은 동맹을 바랐던 거지. 또 다른 볼세비즘이었다고 내가 쓸어버리고 싶은 군부정권과 별 다름 없는 인민을 기만하여 지배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았어.”

“그동안 왜 부정하지 않았나요?”

“ 그것 아는가? 고해보다 죄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지. 부정하는 것은 쉬워! 난 부정할 수 없었네. 나의 말이 진실이라고 여긴 수많은 동지들과 후배가 투옥되고, 다치고, 죽었지 않았나? 그들에게 내 말이 거짓이었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네.”

“잘못되었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잖습니까? 신보련.”

“고백? 그들의 말을 믿나? 그들은 처음부터 신념이 아니었던 거야. 신념을 설파했던 것이 아니라 거짓말로 선동을 했던 거지. 지금은 두 번째 사기를 치고 있지. 주체사상을 버리고 이제 개과천선해서 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되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면에 내세우겠다고? 뒤집어엎으려 했던 그 체제와 역사를 찬양하는 것! 그것이 진실일까? 얄팍한 출세를 위한 거짓수사에 불과해. 그들이 수령을 버렸다고 선언했던 시기를 잘봐! 소련이 붕괴한 휠씬 후의 일이야. 동유럽과 러시아를 여행하고, 북한을 방문하고, 그래서 사회주의 사상이 문제가 있고, 주체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단지 그 사상의 이용가치가 없어졌다는 말인 게지! 모든 사람이 아는 진실을 뒤늦게 눈으로 보고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면 그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적인 지체장애가 아닐까? 그들에게 지금 자유주의란 주체사상과 같은 선전과 선동의 도구일 뿐이고 똑같은 욕망의 표현이지! 청년 시절의 혁명운동이 잘못되었던 것이라 고해를 했다지만,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해야할 대상은 저 지배계급이 아니라 그네들 때문에 감옥에 가고, 병을 얻고, 고생하며 죽어간 동지들이지.”

“혁명, 당신에게 혁명이란 무엇이었던가요?”

“혁명---! 가슴이 이는 불길과 같은 것이었다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오직 혁명으로만 가능하다는 신념. 부모들이 뼈 빠지게 고생하는 것을 보며 성장한 총명한 어린 학생들이 대학이란 데를 와서 눈에 본 것이 무엇이었겠나? 썩어빠진 군부정권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곳이 재벌과 봉건관료들이 부패망으로 물샐틈없이 직조하고 있던 후발 자본주의라는 것. 그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고생하는 부모들의 한을 풀고 우리의 미래를 가꿀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네.”

“그래! 혁명을 꿈꾸지 않는 젊음이 어디 젊음이던가? 세상은 변해야 하고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젊음에서 오는 것 아니었던가? 믿음과 젊음, 혁명의 시작이지.”

“당시 학생들이 왜 사회주의를 택했던가요?”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지침을 줄 그런 사상과 이념에 목말라했지. 마르크시즘은 생애 최초의 철학적 경험이었어. 시골 출신의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세상의 불평등을 한꺼번에 갈아엎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지! 희망은 가슴속에 열정을 불어넣어주었네. 저기 아담이 신에게 생명을 부여받았듯이. 기성세대들이 어린 학생들을 마르크시즘으로, 주체사상으로 몰아넣었던 거야.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비판없이 마르크시즘이라는 엄연한 철학의 조류를 빨갱이 사상으로 불온시한 무지몽매한 것들이 기성세대였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에는 볼 수 없었고, 철학적 훈련의 기회라고는 전혀 없었던 젊은이들에게 서양 근대철학이 응집된 사유체계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거지. 똑똑하고 혈기방장한 청년들이 빠져들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 굴종과 기만, 오욕의 역사에 대한 반감이 그 불온함 속에서 진실과 진리를 발견하게 해 준거야. 부끄러운 일이지만 주체사상은 달랐어. 가장 손쉬운 길이었지. 학습방법도 어렵지 않았네. 서로의 사유를 확인하고 토론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청취와 암기, 주체사상 태두들의 문건을 다시 되뇌는,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교시를 학습하는 것이었지. 철학에는 교시가 없지 않나? 지금 생각하면 학생운동 내 권력확대를 위한 신종 벤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암기과목이었지. 교과서 같은.

그 때 세상을 바꾸자고 앞에서 메가폰을 잡고 떠들던 이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나? 타도하려 했던, 뒤집어엎어 버리려 했던 것들과 놀라우리만치 닮아가고 있어”

“수십 년을 싸워왔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어요. 열망이 왜 절망으로 바뀌었을까요? 수많은 동지들이 왜 절망의 대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우리에게 힘이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지만, 기회가 있을 때에는 단호하지 못했어. 래디컬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적당한 타협의 악수 속에 스며오는 거부하기 싫은 달콤함과 따듯함. 그렇게 섞여갔고 또 섞여가길 원했지. 우리의 비겁함과 교활함에 답이 있다고 보네.”(465~470P발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는데 왜 극좌적 인물들은 종종 극우로 돌변하는데, 극우적 인물은 극좌로 변신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결국 기득권을 누가 누리고 있느냐와 귀결된다고 보며, 386 세대에서는 혁명을 꿈꾸지 않는 자는 청년이 아니라고 했고, 그들은 요즘 세대들에게서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없다고 한다. 이미 386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오포(五抛) 세대들에게 취업고민과 조이(joy)만 추구하도록 틀을 만들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어본다.

소설의 결론도 굉장히 현실적이다.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보며, 다만 작가는 살해되는 사람들을 모두 진보의 편에서 그나마 정의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었을까하는 의문도 품어보며, 차라리 얼굴만 번지러하고 참하게 생긴 여성 변호사 여당 대변인이 쏟아내는 위선과 거짓말에 대해서 징치하는 작가의 후속 추리소설을 기대하며, 형균의 사시 동기인 김세동 검사가 내일 아침이면 또 야망의 불땀을 다시 살리기 위해 분주하겠지만 속으로만 눌러오던 아쉬움을 술김에 하는 넉두리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서초 대검찰청 1층에 있는 디케상 니도 알제? 법공부할 때 교수들이 ‘법이 구현하는 정의’를 설명할 때 예시하던 그리스 신화의 여신상 말이다. 우리 그 때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애써 ‘진실’을 외면하기 위한 것이고, 왼손에 든 저울은 자신에게 오는 금의 무게를 재기 위한 것이며, 오른 손의 칼은 권력을 수호하기 위한 무기라고 비웃었다 아이가? 그러면서 여신이 눈 가리개를 푸는 날이 언제려나 그랬제? 흐흐. 여신이 와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줄 니는 아나? 여신은 절대 눈가리개를 풀지 않을 거거든. 왜? 흐흐. 봉사란 말이다! 겉으로 불편부당, 정의의 잣대를 공정하게 적용한다는 흉내를 내느라고 눈을 가린 척하는 거지. 실상 여신은 정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맹인이라꼬..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 땡크 앞세워 정권 잡은 그 머리 벗겨진 대통령이 뭐라 캤노? ‘정의사회구현.’ 그 정의는 여신의 정의가 아니라, 권력자의 정의지! 권력자의 정의와 저항하는 자들의 정의가 서로 싸우고 있응께. 정의가 갈팡질팡하는 것 아니겠나?”(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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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의 아들
에셀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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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추기경의 아들

저자인 에셀 보이니치가 이탈리아 정부의 문헌을 바탕으로 1830-40년대 이탈리아 민족통일운동을 배경으로 1897년에 저술한 反가톨릭종교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100여년간 여러 세대에 걸쳐 전 세계 독자들 특히 공산권 국민들의 가슴을 울린 반기독교 문학의 걸작으로 “속세의 복음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버트란드 러셀이 극찬한 소설이라고 하여 읽기 전부터 많은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접했다.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반종교적인 논리를 펼친 러셀의 “종교는 필요한가”를 예전에 읽었지만 지금은 어떤 내용인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렇게 쉽게 소설 형식으로 기술하니 훨씬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과 위선이 종교를 비롯한 기득권 질서와 어떻게 유착고리를 만들고 있는지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생생한 상황 전개 그리고 앞뒤의 한치도 오차없는 전조와 구성 등이 돋보인다.

주인공인 아서 버튼은 부유한 영국인 집안의 가톨릭 신자로 자라지만 대학 초년생 때 지하운동 조직에 가담한 일로 체포된 후에 겪게 되는 고해신부의 배신, 사랑하는 여자로부터의 오해, 신부의 사생아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에 겪는 충격으로 자살을 위장하고 반미로 밀항한다. 갖은 고초를 겪어 손과 발이 불구가 되고, 외모마저도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13년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와 ‘갯플라이’라는 필명으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이탈리아 교황령의 가톨릭정권 타도와 민족해방투쟁에 목숨을 건다. 사랑하는 여자인 볼라에 대해서도 사랑을 표현할 수 없고, 아버지이지만 증오의 대상이 된 몬타넬리 추기경에 대해서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애증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아픔이 짠하다.

‘청년이탈리아당’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을 몰라도 너무나 친숙하게 이 소설에 공감하는 것은 지리적, 시대적 차이는 나지만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민족통일운동이 해방전후에 시작하여 얼마전까지도 아주 강하게 발생하였고, 우리의 삶의 일부로서 다가왔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각종 민족해방론자와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의 논쟁을 읽고 있으면 꼭 우리가 겪은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여 꼭 한국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한다. 민족해방이던 민중해방이던 결국 기득권 질서를 타파하기 위한 고뇌와 방식은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 사람들이나 비슷한 고민과 상황을 겪는 것 같다. 기득권 질서를 타파하기 위하여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 급진주의자 등이 모여서 회합을 하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그들끼리 서로 믿지 못하면서 새로운 분파를 계속 양산하는 형국이 꼭 우리의 자화상 아니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을 보는 것 같았다. 작가가 민족해방운동 등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면밀한 묘사나 상황 표현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종교는 아편’이라는 공산주의 논리는 아닐지라도 과연 종교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존재하는지 아니면 현존 질서를 옹호하고 현세의 고단함을 망각시키기 위한 기득권의 정치기술의 일종인지 고민해본다. 한국 종교단체 특히 교회의 일부 목사들과 종교인들이 목사직을 세습하고, 부를 축적하여 기업화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하고, 너무나 명백한 극우세력의 논조로 정견을 발표하는 행태가 언제 끝날지 암담하다. 그러한 암담함이 이 소설 속에서도 잘 녹여져 있고, 주인공의 고뇌도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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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을 보는 생각 - 하버드가 묻는 7개의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로버트 사이먼스 지음, 김은경 옮김, 조철선 감수 / 전략시티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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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전략을 보는 생각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경영전략서를 만나 그 동안의 갈증과 호기심을 어느 정도 풀었다. 전문지식 위주의 새로운 경영기법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잡탕 지식의 나열식 구조가 아니라 회사나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하는 정석과 같은 책이다. 경영의 복잡한 문제들에 두루 적용되는 해결책이라고 하는 특정 전략이나 새로운 경영기법은 없고, 기업에 따라 해결방법도 다르며 리더들이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잘근잘근 씹어서 소화가 잘 되게끔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밑줄 긋고 요약해 보았다.

책의 도입부에 “가장 심각한 실수는 잘못된 대답이 아니라, 잘못된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비롯됩니다.”로 시작한다. 올바른 질문을 던져 그 해답을 찾으려는 전략적 사고를 유도함으로써 회사에서 가장 적합한 성공 전략을 도출하고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합심해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에서 취하고 있는 논리 전개 방식과 유사하다.

협업을 통해 전략적 사고를 자극하는 7C로 불리는 7가지 질문은 1) 핵심 고객(Customer)은 누구인지?, 2) 핵심가치(Core value)에 따른 우선순위가 명료하게 정해져 있는가?, 3) 평가에 반영되는 주요 성과 변수(Critical performance variables)?, 4)전략적 통제의 경계(Constraints)를 어디까지 정했는가?, 5) 창의적 긴장감(Creative tension)을 어떻게 조성하고 있는가?, 6) 조직구성원들은 서로 협력(Commitment)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가?, 7) 밤잠을 설치게 하는 전략적 불확실성(Contingencies)은 무엇인가? 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질문들은 전략을 창출하는 방법을 넘어 전략을 올바르게 실행하는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잇고, 7개의 전략 질문 목록은 제시 순서나 전개방식에 질서가 있기에 처음부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않고는 다음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못 찾는 구조로 되어 있다.

7가지 질문에서 1)은 핵심고객을 명확하게 정의하면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가능한 모든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리더라면 지금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2)는 고객과 직원, 주주 중에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진정한 핵심가치에는 어려운 결정에 직면했을 때 ‘누구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가’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1)과 2)는 전략실행을 위한 기반을 공고하게 구축했는지 여부를 질문한다.

3)은 올바른 목표를 정하고, 책임을 부여하며 성과를 관찰하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하다. 잘못된 성과 지표에 집중하거나 무분별한 지표들로 가득 찬 평가표를 기준으로 한다면 전략 실행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리더는 전략의 성공과 실패를 분명히 나타낼 수 있는 주요 변수만을 선택함으로써 중간 관리자들이 이 변수들에 기초하여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4)는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의 개인적인 행동이 공들인 전략을 실패하게 만들고 전체 조직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부정문으로 기술되는 전략적 경계는 구성원들의 진취적인 시도를 조직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방향에 맞추도록 해준다.

3)과 4)는 리더가 모든 구성원이 조직의 전략적 의제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는지 여부를 질문한다.

5) 구성원들이 기꺼이 혁신에 헌신하도록 조직 내에 창의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혁신을 자극하는 3가지 방법(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개인별로 순위를 책정하고, 팀별로 순위를 책정하도록 한다.)과 부서 벽을 넘는 혁신을 만드는 4가지 방식(통제 범위보다 폭이 넓은 책임 범위를 정한다. 모든 비용을 부서별로 할당한다. 여러 부서를 아우르는 통합팀이나 프로젝트팀을 만든다. 때론 조직 구성원들에게 두 명의 상사를 배치하는 매트릭스 조직을 만든다.

6)조직도 서로 협업하는 문화와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는 문화 중에서 리더는 선택한 것을 명시하지 않았거나 선택한 것이 실현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전략 실행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헌신하는 분위기 구축에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을 유도하는 기법(목적에 기반을 둔 자부심, 조직과의 일체화, 동료에 대한 신뢰,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평성),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문화가 적합한 기업에서 사적인 이익에 따라 동기를 부여하려면 보상을 이용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동료를 돕는 데 헌신하는 일고 보상 사이의 상호작용은 좀 더 복잡하다. 이 경우 팀 성과에 대한 보상을 하는 대안과 조직 구성원들간의 소득 격차 개선을 통하여 협력의 와해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5)와 6)은 리더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성공에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박차를 충분히 가하고 있는지 여부를 질문한다.

7) 리더가 잔력적 불확실성에 관심을 쏟는 태도는 조직 구성원들도 그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기업들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는 쌍방향 정보 교류에 집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하고, 운영 관리자들과 직접 대면하며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전략적 불확실성을 주제로 한 토론과 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며, 새로운 실행 계획이 도출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 내 카산드라(세상이 믿어주지 않는 예언자)를 적극적으로 양성하여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이 말하는 두려움을 제거해주어야 하며, 보상도 적절히 활용하는 게 좋으며, 직원들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협력을 할 수 있도록 서로를 신뢰해야만 한다.

7)은 만일의 사태와 관련한 질문에 환경의 변화에 대해 긴밀하게 대응 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협업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해 촛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질문들을 이용하여 조직 구성원들을 논의에 참여시키려면 1)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해야 한다. 2)논의가 조직 전체로 펴저나가야 한다. 3) 조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모든 사람을 이 논의에 참여시켜야 한다. 4)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두고 논의해야 한다. 상대의 직함이나 사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리더는 모든 구성원이 위험을 감수하고, 인기없는 견해도 말하며, 현재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5) 논의의 결론은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로 마쳐야 한다. 이 질문들은 기업의 중요한 문제들을 좀 더 집중적으로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활용되는 도구이긴 하지만, 리더가 논의에 참여하는 목적은 결정을 내리고 궁극적으로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다.

7개의 전략 질문은 재료일 뿐이며, 이 질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성패는 질문들을 활용하여 어떻게 조직 구성원들이 전략적 사고를 하도록 만드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직 구성원들이 기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켜야 하는 원칙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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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유나 린나 스릴러
라르스 케플레르 지음, 이정민 옮김 / 오후세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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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샌드맨

전지적 작가 시점의 스릴러 추리소설이다. 샌드맨은 유럽에서 전해지는 잠의 요정(귀신)을 모티브로 하여 소설로 만들었는데, 한국적 정서로는 뭐 딱히 비교할 수 있는 귀신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게 구전되어 오던 동화를 스릴러 소설로 만든 작가의 발상이 탁월하다. 요즘 이러한 동화를 모티브로 하여 새롭게 각색한 소설이나 영화가 유행인 것 같다. 다만 유럽의 이러한 정서를 잘 모르는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선 다소 감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을 자극하여 만들어진 소설이기에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본다. 스릴러 영화와 같은 빠른 진행과 간결한 문체 그리고 잘 짜여진 구성이 아주 돋보이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스릴러 소설이 인간 본성과 감성을 얼마나 치열하게 잘 자극하고 유효적절하게 짚어 내느냐가 관건인 것 같은데, 인간의 이기심과 복수심을 바탕으로 하여 죽인 자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에 대하여 고통을 주는 것이 복수라는 새로운 설정이 이채롭고 인간의 잔인함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신과 의사인 안데르스 퀸의 뒤틀린 성적 욕망과 이기심 이를 이용하여 탈출을 감행하려는 유레크 발테르, 이를 저지하고 공범의 존재를 찾아서 펠리시아를 찾기 위해서 위장 잠입한 미모의 형사인 사가, 스웨덴 최고의 형사인 유나가 벌이는 두뇌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것이 “양들의 침묵” 과 같은 멋진 스릴러 영화를 한편 보는 것 같다. 레이다르가 실종된 딸 펠리시아에 대한 회한과 연민을 서술한 부분에서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써 나도 그러한 면이 있었다는 감정이입을 하며 가슴이 짠하고 마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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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별자리
김형식 지음 / 북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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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별자리

어릴 때 부모를 여위어서 고독함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순수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은 8월 중순의 어느 저녁에 북삼리라는 휴전선 인근의 임진강이 흐르는 마을을 방문한다. 해 저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기 위해서 여울가에 홀로 앉아 석양의 여운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우연히 길을 잃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인공에게로 다가오고 그것이 운명처럼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여주인공(요정)의 갑자기 찾아온 죽음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되는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하늘이 푸른 바다로 보이고, 별들이 빛나는 섬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착각.’ 나는 그녀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하늘 속 옥수수밭에 꿈과 희망을 만들었다. 젊은 날, 아름다운 기억,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지면, 과거의 모습을 자꾸 회상하게 된다는 주인공은 하늘 속 옥수수밭 어느 별로 돌아가 버린 여주인공을 회상하며 바뀌지 않은 계절과 세월을 보내면서 바뀌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라 여긴다는 작가 소개의 글처럼 소설도 순수 애정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과 흐름은 소설 속에도 언급되어 있는 알퐁스 도데의 “별”, 소설 전반에 걸쳐서 언급되어 나오는 어린 왕자와 늑대 이야기처럼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그리고 여주인공의 죽음과 순수한 사랑은 황순원의 “소나기” 등을 모티브로 하여 나온 이러한 소설의 교집합처럼 느껴지게 한다.

구성은 여느 소설처럼 통속적이긴 하고, 체계적인 소설 전개나 흐름 특히 반전 등의 전개가 없이 그냥 투명하게 1인칭 작가의 시점으로 담담하게 이야기 하듯이 끌고 가는 것이 특징이고 다만 동어반복적인 내용과 문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쉽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또한 세태가 그러하지 않을수록 이런 순수 소설이 많이 가슴에 와 닿고 각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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