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 21세기 분배의 상상력
김만권 지음 / 여문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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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김만원, 여문책, 20190104)


AI시대에는 산업사회에서나 적합했던 노동 중심적 분배정책과 복지정책이 한계를 맞이하였고, 이에 따라 국가는 ‘자본과 노동’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넘어서 ‘상품과 소비자’, ‘자본과 소비자’를 만나게 해주는 역할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치경제적 해법이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라는 것인데, 이 책은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의 개념과 역사적 유래, 근거, 타당성 등을 아주 쉽고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이 확산되는 현재의 소비사회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과 충분한 소득이 생긴다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며, 오히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더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절망적인 현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작가의 저술 동기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본다. 기존 자본주의의 기본논리인 시장질서와 사유재산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옹호하면서도 자본가들이 이 개념을 옹호하는 이유와 실행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고, 새로운 분배주의자들은 ‘노동’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지도 않고, 오히려 이들은 새로운 분배가 인간이 소유한 자유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기본소득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산업사회와 달리 지금의 탈산업사회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데,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분배가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정당한 분배 밖으로 내모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베스가 최소소득을 주장(108p)하면서 왜 빈민을 구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핍이 미친 혹은 사악한 행동을 야기하기 전에, 궁핍해 보이는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기 전에 --- 괴로워서 감사하기도 어려운 요청을 하기 전에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고 더욱 고마워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문구는 한국 사회에서 뜨겁게 논의되었던 초등학교 무상급식 문제를 돌아보게끔 한다. 자산조사에 입각해서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선별해 제공하는 복지는 국민을 주는 자와 받는 자로 분열시키고 주는 자는 박탈감을, 받는 자는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며, 특히 노동하지 않는 사람을 2류 시민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주의자들은 복지국가라는 발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건 없는 사회배당을 주장하는 조지 D.H.콜은 “현재 생산력은 사실상 현재의 노력과 사회적 유산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이런 사회적 유산은 모든 시민의 공동유산이기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성과물을 다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배분 이후 남은 생산물만 현재 우리가 나누어 갖는 형식으로 분배하자” 는 기본소득의 유래를 짐작케 한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필요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의 실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을 세상에, 그리고 권력에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머리에 새겨두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 스스로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그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나아가 당신에게 보장된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의 실현이 사회정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유와 정의가 만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또한 선진국에서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모든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해서 개인이 직접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기본소득제도는 자본이 추구하는 이익과 맞아떨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중에서 “역사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자본수익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또한 그 이익이 자식 세대에게 세습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현상”은 기초자본 도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고, 기초자본의 목표는 ‘ 한 정치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이 출발선상의 평등을 최소한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페인은 1797년 토지분배의 정의에서 이미 “이 지상의 모든 것이 애초에 공유물이었다면, 언제 태어나든 모든 인류가 하느님이 주신 자산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 그런 권리가 박탈된 후대들에게 보상해주자는 제안”을 했다는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며, 1999년 브루스 에커먼과 앤 알스톳은 [지분소유자 사회]에서 “모든 젊은이가 일정 연령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사회가 상속을 해주자. 이 상속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실질적 자유를 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라고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기초자본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부가 시장을 통해 분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장은 국가의 제도 아래서 작동하는 것이다. 작동하고 있는 모든 시장은 국가가 만들어낸 제도적 산물이다. 그 사장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면 그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의 제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평등은 잘못된 법적 질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더욱 악화되고 있는 소득과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게 되고 앞으로 누가 권력을 잡는다 해도 지금보다 고용지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산업구조 자체가 변해가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수준을 잘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보며 아니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큰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주장에도 공감하며, 녹색당이 주장하는 기본소득과 정의당이 내세운 기초자본은 ‘소득과 부의 이전과 확산’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본질적인 측면에서 서로 어긋나지 않다. ‘노동에 대한 요구가 없다’는 점에서, ‘자유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기회를 주려 한다’는 점에서 이 두 제안은 사실상 같은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두 제안이 제시하는 삶의 비전 자체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꾸준히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자는 것이기에 이 제안의 이름처럼 ‘소득’의 이전과 확산이 주요 목표인 거죠. 사실상 ‘지속 가능한 소비’가 목표인 것이며, 반면 기초자본은 개인이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하기 때문에 특히 기초자본주의자들은 인생 초기에 나타난 불평등이 평생을 지속하기 때문에 출발점의 불평등을 완화해야 진짜 교정효과가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 누구라도, 단 한 차례라도 실질적으로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인생설계 기회의 확산’이 목표라는 것이다.(229~230p)

 

“정의는 원칙이지만 불의는 현실입니다. 정의는 인간이 만드는 게 아니라 제도가 만든다. 정의로운 제도 아래 정의를 이해하는 세대가 자라난다. 혐오와 차별이 놀이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권력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제도가 그 혐오와 차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작가의 언급은 가슴쓰리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야말로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누군가가 가난해진 뒤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최소한의 자산과 인적 자본을 보장해서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대다수의 불평등이 유년기부터 시작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만약 우리가 이를 근본적으로 교정하고자 한다면 끝이 아니라 시작, 다시 말해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교육, 더 많은 자본이 더 많은 기회의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라면, 소수를 위한 상속을 넘어 인생의 출발점에 선 청년 모두를 위한 상속이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게 제 이론적 신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소득의 집중은 경기를 탈 수도 있다고 하지만, 부의 과도한 집중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제도가 만들어낸 부정의의 산물이라고 작가의 믿음은 곧 독자들의 믿음과 일치하는 것 같다. 하위 인구 50%가 차지하고 있는 부의 전체 양은 ‘10년에 2.3%,’13년에 1.7%, ‘18년에는 몇 %일지 자료를 찾아봐도 아직 드러나지 않지만 확신하는데 더 열악해졌을 것이다.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 전격적으로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여유로운 삶과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힘들어도 여전히 열심히 직장에서 일할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행복해지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었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자리잡을 테니까. 모처럼 읽고 나서 청량감과 기분 좋음이 지속되게 만들고 가슴 뛰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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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 승자독식 사회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조성복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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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조성복, 지식의 날개, 20181218)

현재 2018년말의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이 아닐까 하는데 조성복 박사는 이를 독일의 정치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으며 선견지명이 있어서 시기적절하게 이 책을 출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독일의 정치 즉 독일의 정치인, 정당제도, 선거제도, 정치 시스템을 조망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정치 개혁을 실제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결국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의 사례에서 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각종의 정치학 교재와 실증적인 여러 정치 논문을 봤지만 한국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아주 적확하게 분석하고 독일의 정치에서 그 대안을 찾는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좋은 정치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그 사회정의란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창출하는 분배의 불평등과 노동문제, 그것이 가져오는 인간성 및 공동체성의 상실 내지는 부재 등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소중한 것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치체제이자 정부형태이기 때문이다. ‘만약 민주주의가 그러한 실체적 내용을 구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런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라는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독일의 정치를 바람직한 모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독일은 민주주의가 해야 할 역할을 현실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추천사에서 설파하는 것처럼 독일 정치를 해부하고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학술적, 이론적 측면만이 아닌 실천적 측면 즉 한국 정치가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찾아내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현상은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여러 가지 문제가 누적된 결과이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인간다운 삶이 어렵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이며, 이는 무엇인가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그 모순의 원인이 제도나 시스템의 잘못에 있든지 또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잘못에 있든지 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비로소 선진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다루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치의 영역이며, 이에 모범이 되는 국가가 바로 독일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합의제 시스템은 복지, 분배 등과 관련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소위 ‘조정시장경제’와 친화성을 갖는 것으로, 이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다당제, 연립정부 등의 특성을 가진 의회중심제(의원내각제)에 적합한 제도이다. 반면에 한국의 정치시스템은 ‘다수제 민주주의’로 소위 ‘자유시장경제’와 친화성을 갖는 것으로, 이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선거제도에 기반을 두어 양당제, 단독정부 등의 특성을 가진 승자독식의 대통령중심제에 적합한 제도이다. 다수제 시스템은 과거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데에는 큰 기여를 하였으나, 고도성장을 멈춘 이후 분배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로 볼 수 있는 양극화 및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승자독식 다수제 정치시스템을 독일과 같은 합의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실제 경험적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제도는 강한 다수제적 속성을 보이는 반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합의제적 가치체계를 갖는 시민들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바로 독일의 의회중심제 정치시스템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합의제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존 선거제도를 변경하고 정당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1장 독일의 정치인

독일의 총리들은 모두 이른 나이에 정치권에 들어왔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16세,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는 27세(2차대전 직후 사민당에 가입), 헬무트 콜은 16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19세에, 앙겔라 메르켈은 이미 14세에 정당에 가입한 것이 그 증거이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정치인의 전문성이 중시되고, 젊은 나이부터 정당활동을 통해 길러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서의 성공이나 유명세보다도 정당활동과 당원들의 지지가 중요하다. 반면에 우리는 독일과 달리 정치 신인들의 정당활동 경력보다 주로 유명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와 같은 유명세가 정치인의 필요 조건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정치인의 역할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40~41p)

중요한 사회문제들에 대해 정치인이 나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직무유기이다. 지역과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문제들에 맞서 열정과 균형감각을 가지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만약 실패할 경우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43p)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유명하거나, 돈이 많거나,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이들이 주로 정치인이 된다. 그러나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이가 바로 정치인이 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성공을 이어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각 정당이 차세대 정치인을 육성하는 데 소홀하고, 정치 전문가 양성에 걸맞는 시스템이나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섥킨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면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토론하고 조율하는 능력, 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이는 어떤 개인이 똑똑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과는 다르며, 다양한 정치적 학습과 경험, 그리고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47p)

'새 정치‘란 먼저 여야를 막론하고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정당정치를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릉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각 정당이 공직 후보자의 공천권을 당원에게 온전히 돌려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선언적 또는 형식적 차원이 아니란 의미이다. 그러면 공직에 당선된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당원의 뜻이 곧 국민의 뜻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 신인이나 지망생들도 중앙에서 공천권자의 눈치를 살피며 한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현장에 내려가 당원의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57p)


제2장 독일의 정당제도

각 정당의 지역조직에서부터 의견이나 주장이 모아지고, 그것이 상부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정당 전체의 주장으로 힘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사항이나 시민들의 의견이 각 정당의 안산 지역 조직에서 수렴되고, 정리된 내용들이 경기도당으로 전달되어 논의되고, 다시 중앙당으로 올라가서 정치권에서 쟁점화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당원뿐만 아니라 국민과 함께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공감대가 형성되며,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국회의원이나 당대표 또는 유명 정치인이 홀로 문제를 제기해 보았자 설득력이나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정당의 기능과 역할이 활성화되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과 탐욕에 빠진 기업을 규제하는 제어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대형 사고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었으면 한다. (69~70p)


제3장 독일의 선거제도

2012년 19대 총선결과를 독일식 제도에 맞추어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뜻밖에도 이 제도가 당시의 새누리당에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오히려 총 의석수는 4석이 늘어났고, 비례대표가 전국 단위에서 권역별로 바뀌면서 특히 서울과 경기도 에서는 23석이나 증가하였다.

이처럼 새누리당의 의석이 늘어나는 것을 이해하려면 ‘초과의석 (?berhangmandat)’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 용어는 독일의 대학에서 시험문제로 출제될 정도로 독일식 선거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 당시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데다 개념이 생소하여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초과의석이 발생하는 이유는 각 정당의 총 의석수가 우선적으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별도로 선출하여 합산하는 방식이 아니다. (171p)


4장 독일의 정치시스템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무제점은 치열한 선거전에서 승리를 통해 엄청난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입법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철저하게 승자독식의 제도 때문에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고, 또한 여기에 과반 지지를 받지 않고도 당선되는 경우, 또 사전에 후보를 단일화해 버리는 경우 등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런 막강한 권한도 국회의 입법과정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별다른 힘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전혀 제왕적이지 않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정작 중요한 것은 위에 언급한 막강한 인사나 예산권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거나 변경하기 위해 법을 제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을 통해 비로소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 내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막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무력하다면, 그것은 정치시스템상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제를 바꿔야 하는 까닭이다. (227~228p)


5장 한국의 정치개혁

정당득표율로 의석수를 결정하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이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 그리고 지구당 부활 허용은 정치혁신을 담보할 만한 훌륭한 제안들이다. 반면에 석폐율제와 오픈프라이머리 제도의 도입은 앞의 제안과 모순되거나 역행하는 발상이기 때문에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269p)

한국과 독일의 비례대표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한국의 비례대표는 지역구 출마자와는 완전히 별개로 후보로 지명되고 의원으로 선출되지만, 독일에서는 지역구 후보가 그대로 동시에 비례후보가 된다. 한국에서는 비례대표가 특정 이익집단의 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독일에서는 지역구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후보들에게 당선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여기서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바의 정확한 의미는 흔히 알고 있거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는 이익집단이나 소수자 그룹의 대표자 수를 확대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에 따라 지역구에서 수많은 사표가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277~278p)

우리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미국처럼 합법적으로 보다 많은 정치자금을 모으고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고, 반대로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면 독일처럼 정치를 하는데 돈이 들지 않도록 정당 제도, 선거 제도 등을 바꾸는 것이다. (290p)

에필로그: ‘노오력’과 정치개혁, 그리고 지방선거

청년들에게 단순히 좀 더 ‘노오력’해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현재의 공정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살맛나는 세상이 되려면 기존의 경제시스템이나 사회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시스템을 확 바꾸려면 그것을 설계하는 기존의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정치가 자신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변하려면 선거제도 및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 기존의 정치 시스템과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현행 선거제도가 계속해서 존속 하는 한, 우리 정치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324p) 

 

결국 결론적으로 날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 그 대안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정치‘라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취약한 정당활동이 정상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기존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 정체의 문제점을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으로 개선하는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고 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한국현실정치 개혁서 같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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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테러리스트, 첼로 경기문학 23
이숙경 지음 / 테오리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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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테러리스트, 첼로(이숙경, 테오리아, 20181212)

경기문학 시리즈(23)의 《1944, 테러리스트, 첼로》는 동명의 소설과 ‘유다의 키스’ 두 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1944, 테러리스트, 첼로〉는 20세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개인의 일생을 얽히고 설킨 가족사와 함께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해방 직전에 가장 부르조아적인 첼리스트에서 어쩌면 우연한 기회에 일제에 항거하는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가 군사 독재 시절에 또 어쩌다가 민주 투자가 되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가 만년에 고국으로 귀국해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이재하 옹의 병간호를 억지로 떠맡게 되는 외손녀가 주인공의 입장에서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일생을 묘사하고 있다. 굴곡지고 뒤틀어진 한국의 현대사처럼 그 속의 개인들의 삶도 참으로 굴곡지고 뒤틀어져서 사연없는 사람이 없지만 ‘독립투사’, ‘민주투사’ 이런 명칭이 마치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허울뿐인 수식어처럼 느껴진다. 

 

〈유다의 키스〉에서 연극배우이자 자유분방하게 사는 어머니는 주인공인 ‘나’가 사랑하는 소설가 ‘혁명’과 결혼하려고 한다. 어머니 보다 무려 열여덟살이나 어린 소설가인 ‘혁명’이라는 남성을 두고 모녀지간이 삼각관계에 빠지는 막장 드라마의 소재 같지만 88세대의 포기와 절망 그리고 우울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배신하였던 ‘유다’를 왜 제목으로 했을까 하는 의문과 또 왜 ‘키스’를 붙여서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소설을 읽어면서 이것이 ‘화해’인지 ‘용서’인지 곱씹어보게 되며, 삼각 관계의 중심인 남자의 이름을 왜 또 ‘혁명’이라고 했을까 하는 고민도 해보게 된다. ‘혁명’과 어머니는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날 크로아티아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길에 돌연한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죽고, 장례를 치르고 말기암으로 죽어가는 이모와 함께 엄마의 부장품을 정리하면서 ‘엄마의 사랑의 원주율이 세상 사람들보다 조금 컸다’고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이모가 찢어버린 엄마의 노트는 그렇게 해서 나의 생에서 완전히 뜯겨 나갔다’고 묘사하면서 어머니와 관계를 청산하고 소설은 ‘혁명’과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단편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하여 어러 번 곱씹어 읽게 되는 소설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막장드라마 같은 금기된 사랑을 소재로 하였지만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여과없이 잘 후비고 찌러고 하여 감동을 주고, 어머니와 극단적 갈등이 불편한 관계로 설정되었지만 어쩌면 용서와 관용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는지 한다. 소설의 뛰어난 구성력과 지나칠 정도의 디테일한 묘사는 잘 모르지만 ‘이숙경’이라는 작가의 굴곡진 인생이 녹여져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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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양장)
김수현 지음 / 마음의숲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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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마음의숲, 20181105)

SNS 등의 영향으로 온통 타인의 삶을 시기하고 모방하기 바쁜 혼탁한 세상에서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에세이를 6개의 파트로 열거한 작품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약육강식이라는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여차하면 국물도 못 얻어먹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 동안에 잊고 지냈던 정작 자신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고요한 마음의 평안이라는 선물을 주는 책인 것 같다. 아들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회사원으로서 주어지는 숱한 역할과 강하게 압박해오는 책임과 의무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정작 나 자신은 없는 것 같은 삶이 반복되다 어느 날 뒤돌아보면 자신은 정작 빈껍데기일 뿐이라고 느낄 때가 많은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온갖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소홀했던 현대인은 애어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사람은 엄마의 자궁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가 이 세상에 나오면서 육체적으로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하지만,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유 없는 반항과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를 거쳐야 자기 정체성을 조금씩 확립해 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애어른인 현대인은 고비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이런 과정을 반복해가는 것 같다.

 

자존감의 원리를 최초로 규명한 심리학자 너세니얼 브랜든은 건강한 자존감을 자신을 돌보며 현실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이자 자신감이라는 <자아 효능감>과 스스로를 존중하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인 <자기 존중감>이라는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72p)고 하는 것처럼 이젠 우리 애어른들도 또 다른 사춘기, 갱년기에 접어들기 전에 자신에 신뢰가 믿음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함을 일깨운다.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삶을 일구는 것이 나다운 삶이다. 그 시작을 위해선 당신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당신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에 행복해지는 사람인지, 나는 남과 어떻게 다른지, 자기 감각을 찾자.(80p)


우리 회사 여직원들이 가끔 사무실에서 우는 일이 발생하는데 알고 보면 소위 고객사의 담당 직원의 욕설과 인격비하 등 ‘갑’질 횡포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인간이란 참 잔인하고도 몹쓸 종족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난의 이유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차별과 계급을 정당화하는(22P) 자본주의 틀에서 같은 노동자 입장이라도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직이나 회사라는 위치에 있다면 갑질을 해대는 세상이다. 일본인 개개인들의 친절하고 따뜻한 호의와는 완전 별개로 일본 국가라는 군국주의 망령이라는 횡포에 따라 자행된 각종 인권유린과 인체실험을 했던 조직 속의 그들도 아주 평범하고 따뜻한 아버지이자 아들이었을 것이다. 조직이나 회사, 국가가 자행하는 만행과 개인의 만행과 갑질을 별개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나 자신을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면 타인에게 상처주고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이 책의 일깨워준다. 감수성 짙고 따뜻한 심리학자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잘 버티고 잘 살기 위한 지혜를 주는 꿀 팁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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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밑의 개
나하이 지음 / 좋은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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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밑의 개 (나하이, 좋은땅, 20181003)

엄지 손가락만한 작은 강아지가 악동과 같이 마냥 떼를 쓰고 투정을 부리지만 정성으로 보살피는 미소 덕분에 그것이 행복인줄도 모르고, 심지어 잠을 자면서까지 미소의 눈길 안에 있고 싶어서 눈 밑에서 잠을 자는 아주 작은 강아지의 성장 이야기 동화라고 할 수 있다. 미소 이모가 잠시 맡겨둔 메롱이의 꾐에 빠진 엄지는 엄지와 같이 사람도 동물도 작은 그런 나라에 있는 엄마와 아빠를 찾아가기 위해서 집을 나선다. 엄지는 집은 나선 순간부터 온갖 모험과 시련이 닥치지만 굳굳하게 버티며 난관을 극복하며 몸도 마음도 함께 성장해 나간다. 그러면서 결국 미소에게 사랑받고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였었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만큼 후회하게 된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삶의 의지를 잃고 안락사의 위기에서 간신이 미소를 다시 만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엄지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성장사 이자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의 사랑과 소중함 그리고 그것이 행복임을 모르고 자라다가 사춘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뜨면서 이유없는 반항만 마냥 일삼다가 후회도 많이 하지만 결국 몸과 마음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이 동화를 통해서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미소 이모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엄지 엄마는 너무나 성장해버린 엄지를 알아볼 수 없고. 또한 미소의 사랑을 잠시나마 독차지 하려고 자신을 꾐에 빠지게 했던 메롱이도 결국 형제지간임을 알게 된 이유, 몸과 마음이 성장한 상태에서 엄지는 미소를 만났지만 어렸을 때와 달리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되지만 그 느낌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인간 위주의 사회가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짜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잔인하고 매몰찬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특히 들고양이들에게 시행하는 임신중절시술 등에 대하여 꼬집고 있기도 하고 있다. 인간 사회가 같은 사피엔스 종임도 불구하고 민족이나 종교, 생각이 다르다고 심지어 같은 울타리 내에서도 가난하다고 무지하다고 다른 인간들에게 자행하는 만행도 동물들에게 시행하는 온갖 학대와 만행과 맞먹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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