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 승자독식 사회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조성복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년 7월
평점 :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조성복, 지식의 날개, 20181218)
현재 2018년말의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이 아닐까 하는데 조성복 박사는 이를 독일의 정치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으며 선견지명이 있어서 시기적절하게 이 책을 출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독일의 정치 즉 독일의 정치인, 정당제도, 선거제도, 정치 시스템을 조망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정치 개혁을 실제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결국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의 사례에서 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각종의 정치학 교재와 실증적인 여러 정치 논문을 봤지만 한국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아주 적확하게 분석하고 독일의 정치에서 그 대안을 찾는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좋은 정치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그 사회정의란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창출하는 분배의 불평등과 노동문제, 그것이 가져오는 인간성 및 공동체성의 상실 내지는 부재 등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소중한 것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치체제이자 정부형태이기 때문이다. ‘만약 민주주의가 그러한 실체적 내용을 구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런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라는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독일의 정치를 바람직한 모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독일은 민주주의가 해야 할 역할을 현실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추천사에서 설파하는 것처럼 독일 정치를 해부하고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학술적, 이론적 측면만이 아닌 실천적 측면 즉 한국 정치가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찾아내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현상은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여러 가지 문제가 누적된 결과이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인간다운 삶이 어렵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이며, 이는 무엇인가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그 모순의 원인이 제도나 시스템의 잘못에 있든지 또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잘못에 있든지 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비로소 선진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다루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치의 영역이며, 이에 모범이 되는 국가가 바로 독일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합의제 시스템은 복지, 분배 등과 관련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소위 ‘조정시장경제’와 친화성을 갖는 것으로, 이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다당제, 연립정부 등의 특성을 가진 의회중심제(의원내각제)에 적합한 제도이다. 반면에 한국의 정치시스템은 ‘다수제 민주주의’로 소위 ‘자유시장경제’와 친화성을 갖는 것으로, 이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선거제도에 기반을 두어 양당제, 단독정부 등의 특성을 가진 승자독식의 대통령중심제에 적합한 제도이다. 다수제 시스템은 과거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데에는 큰 기여를 하였으나, 고도성장을 멈춘 이후 분배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로 볼 수 있는 양극화 및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승자독식 다수제 정치시스템을 독일과 같은 합의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실제 경험적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제도는 강한 다수제적 속성을 보이는 반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합의제적 가치체계를 갖는 시민들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바로 독일의 의회중심제 정치시스템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합의제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존 선거제도를 변경하고 정당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1장 독일의 정치인
독일의 총리들은 모두 이른 나이에 정치권에 들어왔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16세,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는 27세(2차대전 직후 사민당에 가입), 헬무트 콜은 16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19세에, 앙겔라 메르켈은 이미 14세에 정당에 가입한 것이 그 증거이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정치인의 전문성이 중시되고, 젊은 나이부터 정당활동을 통해 길러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서의 성공이나 유명세보다도 정당활동과 당원들의 지지가 중요하다. 반면에 우리는 독일과 달리 정치 신인들의 정당활동 경력보다 주로 유명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와 같은 유명세가 정치인의 필요 조건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정치인의 역할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40~41p)
중요한 사회문제들에 대해 정치인이 나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직무유기이다. 지역과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문제들에 맞서 열정과 균형감각을 가지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만약 실패할 경우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43p)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유명하거나, 돈이 많거나,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이들이 주로 정치인이 된다. 그러나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이가 바로 정치인이 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성공을 이어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각 정당이 차세대 정치인을 육성하는 데 소홀하고, 정치 전문가 양성에 걸맞는 시스템이나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섥킨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면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토론하고 조율하는 능력, 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이는 어떤 개인이 똑똑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과는 다르며, 다양한 정치적 학습과 경험, 그리고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47p)
'새 정치‘란 먼저 여야를 막론하고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정당정치를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릉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각 정당이 공직 후보자의 공천권을 당원에게 온전히 돌려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선언적 또는 형식적 차원이 아니란 의미이다. 그러면 공직에 당선된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당원의 뜻이 곧 국민의 뜻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 신인이나 지망생들도 중앙에서 공천권자의 눈치를 살피며 한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현장에 내려가 당원의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57p)
제2장 독일의 정당제도
각 정당의 지역조직에서부터 의견이나 주장이 모아지고, 그것이 상부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정당 전체의 주장으로 힘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사항이나 시민들의 의견이 각 정당의 안산 지역 조직에서 수렴되고, 정리된 내용들이 경기도당으로 전달되어 논의되고, 다시 중앙당으로 올라가서 정치권에서 쟁점화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당원뿐만 아니라 국민과 함께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공감대가 형성되며,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국회의원이나 당대표 또는 유명 정치인이 홀로 문제를 제기해 보았자 설득력이나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정당의 기능과 역할이 활성화되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과 탐욕에 빠진 기업을 규제하는 제어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대형 사고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었으면 한다. (69~70p)
제3장 독일의 선거제도
2012년 19대 총선결과를 독일식 제도에 맞추어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뜻밖에도 이 제도가 당시의 새누리당에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오히려 총 의석수는 4석이 늘어났고, 비례대표가 전국 단위에서 권역별로 바뀌면서 특히 서울과 경기도 에서는 23석이나 증가하였다.
이처럼 새누리당의 의석이 늘어나는 것을 이해하려면 ‘초과의석 (?berhangmandat)’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 용어는 독일의 대학에서 시험문제로 출제될 정도로 독일식 선거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 당시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데다 개념이 생소하여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초과의석이 발생하는 이유는 각 정당의 총 의석수가 우선적으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별도로 선출하여 합산하는 방식이 아니다. (171p)
4장 독일의 정치시스템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무제점은 치열한 선거전에서 승리를 통해 엄청난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입법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철저하게 승자독식의 제도 때문에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고, 또한 여기에 과반 지지를 받지 않고도 당선되는 경우, 또 사전에 후보를 단일화해 버리는 경우 등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런 막강한 권한도 국회의 입법과정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별다른 힘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전혀 제왕적이지 않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정작 중요한 것은 위에 언급한 막강한 인사나 예산권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거나 변경하기 위해 법을 제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을 통해 비로소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 내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막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무력하다면, 그것은 정치시스템상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제를 바꿔야 하는 까닭이다. (227~228p)
5장 한국의 정치개혁
정당득표율로 의석수를 결정하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이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 그리고 지구당 부활 허용은 정치혁신을 담보할 만한 훌륭한 제안들이다. 반면에 석폐율제와 오픈프라이머리 제도의 도입은 앞의 제안과 모순되거나 역행하는 발상이기 때문에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269p)
한국과 독일의 비례대표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한국의 비례대표는 지역구 출마자와는 완전히 별개로 후보로 지명되고 의원으로 선출되지만, 독일에서는 지역구 후보가 그대로 동시에 비례후보가 된다. 한국에서는 비례대표가 특정 이익집단의 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독일에서는 지역구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후보들에게 당선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여기서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바의 정확한 의미는 흔히 알고 있거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는 이익집단이나 소수자 그룹의 대표자 수를 확대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에 따라 지역구에서 수많은 사표가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277~278p)
우리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미국처럼 합법적으로 보다 많은 정치자금을 모으고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고, 반대로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면 독일처럼 정치를 하는데 돈이 들지 않도록 정당 제도, 선거 제도 등을 바꾸는 것이다. (290p)
에필로그: ‘노오력’과 정치개혁, 그리고 지방선거
청년들에게 단순히 좀 더 ‘노오력’해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현재의 공정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살맛나는 세상이 되려면 기존의 경제시스템이나 사회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시스템을 확 바꾸려면 그것을 설계하는 기존의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정치가 자신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변하려면 선거제도 및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 기존의 정치 시스템과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현행 선거제도가 계속해서 존속 하는 한, 우리 정치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324p)
결국 결론적으로 날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 그 대안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정치‘라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취약한 정당활동이 정상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기존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 정체의 문제점을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으로 개선하는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고 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한국현실정치 개혁서 같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