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의 아들
에셀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서평)추기경의 아들

저자인 에셀 보이니치가 이탈리아 정부의 문헌을 바탕으로 1830-40년대 이탈리아 민족통일운동을 배경으로 1897년에 저술한 反가톨릭종교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100여년간 여러 세대에 걸쳐 전 세계 독자들 특히 공산권 국민들의 가슴을 울린 반기독교 문학의 걸작으로 “속세의 복음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버트란드 러셀이 극찬한 소설이라고 하여 읽기 전부터 많은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접했다.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반종교적인 논리를 펼친 러셀의 “종교는 필요한가”를 예전에 읽었지만 지금은 어떤 내용인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렇게 쉽게 소설 형식으로 기술하니 훨씬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과 위선이 종교를 비롯한 기득권 질서와 어떻게 유착고리를 만들고 있는지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생생한 상황 전개 그리고 앞뒤의 한치도 오차없는 전조와 구성 등이 돋보인다.

주인공인 아서 버튼은 부유한 영국인 집안의 가톨릭 신자로 자라지만 대학 초년생 때 지하운동 조직에 가담한 일로 체포된 후에 겪게 되는 고해신부의 배신, 사랑하는 여자로부터의 오해, 신부의 사생아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에 겪는 충격으로 자살을 위장하고 반미로 밀항한다. 갖은 고초를 겪어 손과 발이 불구가 되고, 외모마저도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13년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와 ‘갯플라이’라는 필명으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이탈리아 교황령의 가톨릭정권 타도와 민족해방투쟁에 목숨을 건다. 사랑하는 여자인 볼라에 대해서도 사랑을 표현할 수 없고, 아버지이지만 증오의 대상이 된 몬타넬리 추기경에 대해서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애증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아픔이 짠하다.

‘청년이탈리아당’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을 몰라도 너무나 친숙하게 이 소설에 공감하는 것은 지리적, 시대적 차이는 나지만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민족통일운동이 해방전후에 시작하여 얼마전까지도 아주 강하게 발생하였고, 우리의 삶의 일부로서 다가왔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각종 민족해방론자와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의 논쟁을 읽고 있으면 꼭 우리가 겪은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여 꼭 한국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한다. 민족해방이던 민중해방이던 결국 기득권 질서를 타파하기 위한 고뇌와 방식은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 사람들이나 비슷한 고민과 상황을 겪는 것 같다. 기득권 질서를 타파하기 위하여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 급진주의자 등이 모여서 회합을 하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그들끼리 서로 믿지 못하면서 새로운 분파를 계속 양산하는 형국이 꼭 우리의 자화상 아니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을 보는 것 같았다. 작가가 민족해방운동 등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면밀한 묘사나 상황 표현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종교는 아편’이라는 공산주의 논리는 아닐지라도 과연 종교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존재하는지 아니면 현존 질서를 옹호하고 현세의 고단함을 망각시키기 위한 기득권의 정치기술의 일종인지 고민해본다. 한국 종교단체 특히 교회의 일부 목사들과 종교인들이 목사직을 세습하고, 부를 축적하여 기업화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하고, 너무나 명백한 극우세력의 논조로 정견을 발표하는 행태가 언제 끝날지 암담하다. 그러한 암담함이 이 소설 속에서도 잘 녹여져 있고, 주인공의 고뇌도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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