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한 암환자가 요양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환자는 바로 이태석 신부인데, 해맑은 미소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 이후 결국 그가 삶을 마감했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다큐멘터리은 이태석 신부의 죽음 이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제작진이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는 데 집중을 합니다. 물론 그가 살아있을 때 카메라로 남겨진 장면을 중간중간에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프리카의 톤즈 마을로 돌아가 그곳에서 이태석 신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묵묵히 보여주고데 애를 씁니다.
그는 힘든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신부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결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나요. 안정된 직장에서 고소득을 벌 수 있는 그런 길을 포기하다니. 그리고 다른 길을 찾은 게 종교인의 길이라니. 문득 이해하기가 어려운 결정을 이태석 신부는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신부의 길을 걸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는 의사의 길을 걸을 때 봉사하러 간 그곳을 못 잊어 신부의 몸으로 가버렸으니 말이죠. 한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가난한 조그마한 마을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납니다. 그곳은 물과 전기 공급이 원할하지 않고 의료 시설도 미비하며 가난에 쪄든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즉, 제대로 제 발로 고생길에 찾아간 것이죠. 이태석 신부는 여러모로 부족한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피해다닐 한센병 환자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신발을 신기고 약을 발라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병원을 세우고 냉동보관해야하는 치료약이 손상되지 않도록 간이 전기 시설까지 세세한 신경을 씁니다. 그렇게 사랑을 베풀다 잠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때 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우물을 파다와서 다시 가야한다는 그리고 자신을 기다릴 톤즈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되돌아가야한다는 그를 결국 붙잡아 치료를 받게 하지만 이미 암세포가 여기저기 퍼져있던 상태. 그는 결국 다시 되돌아가지 못한 채 한국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합니다.
제작진은 이태석 신부가 톤즈 마을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마을 사람들을 취재하고 그가 세운 시설을 보여줌으로써 간접적으로 그의 헌신과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과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외국인에게 마음을 열고 가족 일원인 것처럼 받아들여주었다라는 것은 이태석 신부가 자신의 모든 것을 그들을 위해 헌신했는지 보여줍니다.
70년대만 해도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부유한 나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 맛타령이나 하면서 비싼 음식만을 먹으려고 하고, 유흥업소에서는 술과 여자에 빠져 돈을 탕진하는 사람들로 넘처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과 권력을 자랑하고 더 많은 걸 쥐기 위해 바득바득 남들을 깔아뭉개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태석 신부의 삶은 많은 걸 깨닫게 합니다. 그가 보여준 사랑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그가 내린 결정처럼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난한 마을로 들어가 봉사를 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우리 주변을 돌아보아 부족한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눠주고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영화는 마지막으로 톤즈 밴드 일원에게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순수한 이태석 신부에 대한 톤즈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줍니다.
마지막 장례 행진을 펼치는 장면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