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프랑수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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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고전작품은 쇼핑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조르주 상드의 1840년대 작품이다. 사생아 프랑수아의 고단했던 삶과 사랑에 눈뜨기까지의 과정이 조금은 신파적이면서도 애절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읽혀졌다.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사생아’의 뜻을 찾아보면,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대받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의 일부 기독교국가에서는 일부일처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어서 이러한 사생아의 탄생을 탐욕과 부정의 열매로 규정해 비인도적인 학대도 심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생아 프랑수아 역시 고아원에 버려졌으나 그를 키웠던 여인은 젖을 뗄 무렵 사망하고 그는 또 다시 50세의 노처녀 자벨에게 맡겨진다. 자벨이 프랑수아를 키우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에서 사생아들에게 지급하는 약간의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또 심부름꾼으로 쓸모도 있고 해서였다. 그렇다고 아무런 온정도 없이 그저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프랑수아를 맡은 건 아닌 듯 보였다. 중간에 그를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표현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수아는 사생아에 대한 개념조차 모른 채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천하게 생각하여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언젠가 자벨 역시 자신을 다시 고아원으로 보낼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라서(진짜 버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으니) 더더욱 누군가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로 극심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모습들이 그의 행동, 말투에 하나하나 베어 나왔고 나는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 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극에 달했다.

 

“프랑수아, 벌써부터 그렇게 무조건 참기 시작하면 정말 한이 없을 거야.”

그러자 프랑수아가 펄쩍 뛰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쪽보다 차라리 제가 고통을 당하는 편이 나은걸요.”

 <p.46>

 

프랑수아는 자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친절한 우리 엄마! 엄만 왜 내게서 떠나려고 해?

내가 엄마가 보고 싶어 슬픔에 잠겨 죽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기에 엄마가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거야?...(중략)

엄마, 날 그냥 있게 해 줘. 이렇게 빌게, 응? 항상 엄말 도울게.

엄말 위해 일할 테야.

내가 맘에 안 들면 날 때려도 좋아. 나 아무 소리도 안 할게.

하지만 내가 뭘 잘못하더라도 날 보내진 말아 줘.“

<p.55>

 

아...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어린 소년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버려지지만 않는다면 때려도 좋고, 죽도록 일만 시켜도 좋으니 제발 다시 양육원에 보내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아프게 상상되었다.

하지만, 이들 모자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주인집 마님 마들렌은 프랑수아의 이런 모습을 보자 자신이 그의 어머니가 되어주겠노라고 선언해 버린다. 남편과 시어머니 때문에 몰래 이들 모자를 도와왔던 그녀는 워낙 박애정신이 투철하고 심성이 착했기에 프랑수아가 두 번 버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그를 제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라 외쳤고 그녀의 이런 선언을 들은 프랑수아는 그때부터 오직 마들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이라 각오한다. 마치 영화 브레이킹 던에서 늑대인간 제이콥이 르네즈미에게 각인되어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운명에 놓이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프랑수아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서서히 개척해 가는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평생 엄마로 모시고 아끼고 보호할 것이라 맹세한 마들렌의 곁을 억지로 떠나야 했지만 그는 한시도 그녀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그녀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고통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바로 이 부분부터 조르주 상드는 프랑수아를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모든 사람들에 의해 사생아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비참한 운명을 살아야 했지만 그는 마들렌 못지않게 인정이 많고 온순하며 가장 인간다운 면을 보여준다. 물욕과 색욕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는 가진 것 하나 없지만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이 된 그의 모습은 완벽한 외모와 영리함까지 겸비했으니 더욱 매력적이기 까지 하다. 이 프랑수아라는 인물을 소설 전면에 내세운 작가는 그가 사생아임에도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라는 걸 부각시킴으로서 당시 사회의 편견과 잘못된 관행들에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다만, 프랑수아가 한 여인에게 품은 연민과 애절함은 이해가 가지만 사랑으로 바뀌는 변화의 감정은 완급조절에서 아쉬움이 있다. 너무 급하게 감정선의 변화가 생겨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소설적 재미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남장여인으로 살아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던 저자 조르주 상드가 어떤 인물인지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싶었을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조르주 상드>

 

당시 상드가 남장여인으로 행세했던 건 여성의 작품은 출판하지 않는다는 당시의 사회적 차별에 항의하며 남성 문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겠다는 그녀만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그녀는 평생 ‘사랑’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삶을 노래했으니 어쩌면 이 책의 주제가 남녀간의 질기고도 뿌리 깊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 조르주 상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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