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참치여자 NFF (New Face of Fiction)
사비나 베르만 지음, 엄지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행복은 감각의 문제다. 즉 보고, 듣고 만져보고, 혀로 맛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그의 말이 옳다. 가장 소박하면서도 진정한 행복은 우리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 다시 말해 눈으로 보고, 피부와 혀, 그리고 코와 귀로 느끼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본문 중]

 

우선, 이 책. 독특한 느낌의 멕시코 소설이라서 반갑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라틴아메리카 문학들은 환상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사실 그런 주류에 조금은 지쳐있던 차였다. 그런데 이 소설. 과감히 그런 느낌을 탈피하면서도 철학적 사유로 든든하게 무장한, 게다가 환경과 생물의 존엄성까지 따끔하게 건드리고 있는 반성의 장도 마련해준다. 아무튼 여러 가지의 강렬한 재료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내는 멕시코식 살사(salsa,소스)의 느낌이다.

 

       

 

      <원제는 La mujer que buceó dentro del corazón del mundo>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카렌이라는 여성이다. 어린 시절 지하에 감금되어 마치 동물처럼 학대되어 살아온 그녀는 친엄마가 죽은 뒤 그녀의 이모에 의해 발견되고 그녀가 살았던 곳은 다름 아닌 멕시코의 거대한 참치공장이었다. 그녀의 이모 이사벨은 카렌이 자신의 조카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그것은 진짜 세상으로 그녀를 걸어 나오게 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 이사벨은 카렌에게 열심히 말을 가르치고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고 카렌 또한 그녀 나름대로 세상에 적응해가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녀에게 조금은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물론 카렌은 자폐가 있는 ‘특수한 존재’라는 낙인이 따라다니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언어를 배우고 사람들과 소통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점점 확연하게 분리되어 버린다. 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존재증명을 거침없이 씹어버리며 날 것 그대로의,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것이라고 정의되기 이전의 자연상태로서의 존재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즉, 카렌에게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학문적 이해 따위로 지구상의 다른 종으로부터 우월할 수밖에 없고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정의, 그리하여 인간이 우선시되기에 다른 종들은 대량학살되고 마음대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그럴싸한 우월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독특함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카렌은 우리에게 신비한 존재로까지 기억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폐성 뒤에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감추고 있고, 전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며 존재하지도 않는 것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거나 속을 끓이는 ‘상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여자. 가끔씩 아주 필요할 때만 느릿느릿 생각하여 항상 인간들과 그녀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고 팽팽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바로 이 여자, 카렌.

 

작가는 그녀의 존재를 통해 우리에게 자아를 인식하는 법, 타인으로부터 날 것 상태의 나를 분리해내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수 백 년 전부터 누군가의 입과 사상, 교육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라는 것이 기계처럼 아무런 반론 없이 주입된 것이지, 우리 스스로가 존재증명을 해 볼 기회를 박탈당한 것에 대한 저항감이 이 책의 저자가 우리에게 제시한 첫 번째 과제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참치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과 자연, 환경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진짜 자아를 찾아가게 하는 독특한 방법을 알려준 이 책 참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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