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홍신 세계문학 5
허먼 멜빌 지음, 정광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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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한 권의 책을 잡고 있었다. 평소 인문사회서적을 제외한 일반 소설류나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는 일단 오래 잡고 있지 않는다. 소설이야 그냥 술술 읽어나가면 되고 경영서적은 앞 뒤 문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맥을 끊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책, 분명 하루 이틀이면 다 읽어낼 소설책이었다. 비록 650여쪽에 가까운 묵직한 책일지언정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까지 이리도 긴 시간(약 2주)이 필요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있어 에이허브 선장의 거대한 결투 대상자인 흰 고래만큼이나 버겁고 두려운 존재였다. 고전이 왜 어려운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또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완독한 후에 오는 성취감은 책 10권을 읽은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쾌감을 준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학창시절부터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기에 대충의 줄거리는 알아도 그걸 설명하고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첨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요즘 고전을 읽으면서 현대소설과 참 많이 다르다는 건 문장이 주는 긴 호흡여부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현대소설은 글이 쉽든 어렵든 문장 문장이 경쾌하고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지는 느낌인데 반해, 고전들은 한 문장을 읽더라도 길고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마침표까지 쫒아가느라 힘이 든다. 지금의 소설들이 인물의 감정이나 상태에 초점을 맞춘다면 옛 고전들은 등장인물의 세밀한 감정변화는 물론 외적인 모습과 배경까지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그대로 옮겨놓고자 하는 노력(?)이 그대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이다.

특히 이 소설 <백경>은 저자 자신이 포경선을 타고 험난한 고래잡이 경험이 있었던지라 그 묘사와 배경지식이 너무도 자세했는데 이는 주인공중 한 명인 ‘이스마엘’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 같아 그 생생함과 현실성이 극명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저자가 말하려는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나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선장 에이허브와 고래의 관계를 가지고 인간vs자연의 대결로 보아야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는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도 있다고 보는데(성서에 등장하는 이름들과 같은 주인공들) 나는 기독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이건 논외로 하자. 그렇다고 인간대 자연으로 나누어 어떤 숙명적인 대결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이 책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한 마디로 사람대 사람, 사람대 자연, 또 자연 대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제들이 맞물려 또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탄생되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심연의 증오와 분노, 광기는 물론 인간애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하나의 것들이 사람의 본성에 대한 탐험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미지의 것 혹은 정복해야 할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선장 에이허브의 이성을 잃은 광기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협하는 어떤 근원적인 악에 대한 처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가 그 치열한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이룰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패배는 아니었음에 위안을 얻어야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 이 소설 <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이 더해지기만 하는 책이기에 다시 한 번 도전해야할 숙제를 남겨 놓았다. 역시 처음의 느낌이 맞았다. 바로 이 책이 나에게는 끝까지 치열하게 싸워보아야 할 고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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