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 개정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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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보거라. 사십팔 시간의 여유를 줄 테니 그 여자에게 이 나라를 떠나라고 해라. 만일 내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여자에게 자신의 철면피한 행위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 대해서는, 내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네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것을 알려두겠다. 만일 네가 내 말에 철저히 따르지 않거나 앞서 말한 시간 내에 그 여자가 출국하지 않는다면, 나는 길거리 한복판에서라도 너에게 다섯 발의 총탄을 쏘아 개처럼 죽일 것이다.’ 2부 P.306 중

 

위의 문장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언뜻 보면 불륜을 저질렀거나 삼각관계하에서 벌어지는 애정싸움에 대한 찐한 결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답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협박문이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지 않으면 길거리 한복판에서 총으로 개처럼 쏴죽이겠다는 아버지의 편지란 말이다.

 

여기까지 보면 이 무슨 막장드라마인가 싶을지 모르겠지만 18살 꽃다운 나이의 아들이(소설에서는 아직 미성년자임) 32살이나 된 연상의 여자, 그것도 먼 친척뻘 되는 이혼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고 난리니..이 정도면 뒷목 잡고 쓰러질 부모가 어디 한 둘이랴 싶다.

 

이 책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우리나라에서도 앞 다투어 작품이 번역, 출간되고 있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이다.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기는 하지만 책의 중심내용은 주인공 마리오(자전적 소설이라서 그런지 주인공 이름이 마리오다^^)와 그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리오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한편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뉴스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꿈은 변호사도 뉴스 앵커나 기자도 아닌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고 그는 그 꿈을 위해 열심히 글을 써댄다.

그러던 중 볼리비아에서 잘 살다가 이혼해 돌아온 먼 친척 훌리아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별 감정없이 대하다가 어느 순간 여인으로 바뀐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방송국에는 또 다른 인물이 볼리비아에서 스카웃되어 오는데 그는 그 유명한 라디오 극작가 ‘페드로 카마초’라는 인물로 1회 방송분량의 드라마를 한 시간만에 말로 내뱉듯 술술 써내고 기계처럼 드라마를 찍어내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지어낸 이야기가 마리오의 사랑이야기와 한 회씩 엇갈려가면서 구성되어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여러권의 책을 동시에 읽은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렇게 책은 마리오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위험한 사랑놀이,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색다른 재미와 웃음을 던져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서상 남미문학은 아직까지 거리감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쉽게 책을 권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이 책은 참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작가가 페드로 카마초를 통해 만들어내는 허무맹랑한 단막극들도 인상적이고 신선하지만 18살 청년이 느끼는 금지된 사랑과 결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거리들이 저자 특유의 익살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았다. 참 공감이 가면서도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그러다가도 주인공들로부터 한방 맞는 기묘한 패배감에 이르기까지 이렇게나 복잡한 느낌이 드는 책은 처음이지 싶을 정도이다.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리오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결혼 과정은 엉뚱한 사건사고로 좌절될 때마다 왜 그렇게 웃음이 나던지..이런 건 남미 특유의 문화와 관습에서나 가능하겠지 싶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여린 마음을 부여잡고 돌진하는 마리오는 더 이상 18살 미성년자라기 보다는 어느덧 멋진 청년으로 성장한 듯 보였다.

 

어렵게 결혼에 성공한 그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그들의 결혼생활이 어이없기는 했지만 마리오가 재혼한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하는 곳에서 나는 또 한번 낄낄대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막장 사랑놀음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고 반문하는 찰나 이건 소설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실제 이야기라는 생각에 이르자 이번에는 책이 아닌 저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삶을 더 알고 싶어 미치겠다.

남미 특유의 정서와 저자의 독특한 문체가 제대로 어우러져 근사한 작품이 된 이 책, 몇 년 뒤에 다시 읽어봐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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