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는 완전히 멸종된 줄 알았던 라무스 마니아Ramus mania라는 야생 커피나무의 일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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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는 왕래가 많은 길가에 있었고, 로드리게스에서는 모든 나무를 땔감으로 여겼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베어가지 못하도록 주변에 울타리를 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게 특별한 나무인 모양'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울타리를 넘어가 가지를 잘라내고 잎을 따고 나무껍질을 벗겨갔다. 이런 대우를 받는 걸 보면 특별한 나무인 게 틀림없었고, 그러니 특별한 효험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조금씩 떼어갔다. 숙취가 사라진대, 임질에 특효약이래. 로드리게스에서는 집에서 뒹구는 것 외에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기 때문에 다들 이 나무를 보러왔고, 그렇게 조금씩 잘라가고 꺾어가다 보니 금세 시름시름 죽어갔다.
첫 번째 울타리가 소용이 없다고 판명되자 이번엔 주변에 가시철망을 둘렀다. 그리고 첫 번째 철망 주변에 두 번째 철망을 두르고, 두 번째 주변에 세 번째 철망을 두르면서 울타리가 반 에이커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나무를 지킬 관리인도 임명했다.
큐 왕립식물원에서는 하나 남은 나무에서 잘라낸 부분으로 뿌리를 내려 두 그루를 새로 육성한 후 야생에 다시 옮겨 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철망 바리케이드를 두른 이 한 그루만이 지구상에서 자신의 종을 대표하는 유일한 나무로 남을 것이며, 한 조각을 떼어 갖겠다고 나무를 죽이려드는 사람들로부터 계속 보호해야 할 것이다. 도도가 멸종한 탓에 우리는 더 슬프고 더 현명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단지 더 슬프고 정보만 많아졌을 뿐이라는 증거들도 산적하다.
<마지막 기회라니?> 329~330쪽, 더글러스 애덤스, 마크 카워다인, 홍시
"환경이 밥 먹여주나?"라는 논리(혹은 주장)를 듣곤 한다. 조금 세련되게 말해 보자면, "환경의 파괴로 발생하는 비용보다 그 파괴의 산물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이 크다면 환경 파괴도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환경 파괴라는 것이 과대평가된 위험이라고 주장한다. 환경 파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지구 온난화의 피해는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고, 그 피해조차도 발전한 과학의 힘으로 수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부끄럽지만 나는 과학에 대한 앎이 부족한지라 어느 쪽의 말이 맞을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고작 나무 한 그루 가지고?"라는 말로 위 글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 남은 나무를 재생시키려는 시도는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저 한 그루 남은 나무를 재생시키려는 시도는 우리 인류의 삶이 좀 더 다양해지기 위한 의미가 있다. 모두가 판검사나 의사가 되는 세상보다는 다양한 직업이 있는 세상이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일 것이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 추정하는 공식에서 잔차(residual) 항목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공식과 실제 데이터 사이의 차이가 바로 이 잔차이다. 이 잔차의 존재는 어쩌면 추상화된 공식과 실제 현실이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화는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하게 만든 세상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은 더 다양하고 '현실같기' 위해서, 나는 저 한 그루 남은 나무가 처한 운명을 슬퍼하고, 나무의 번식이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