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기鍾子期가 세상을 뜨자 백아伯牙는 자신의 금琴을 끌어안고 장차 뉘를 향해 연주하며 뉘로 하여금 감상케 하겠나? 그러니 허리춤에 찼던 칼을 뽑아 단번에 그 다섯 줄을 끊어 버려 쨍 하는 소리가 날밖에. 그러고 나서 자르고, 끊고, 냅다 치고, 박살내고, 깨부수고, 발로 밟아, 몽땅 아궁이에 쓸어 넣고선 불살라 버린 후에야 겨우 성에 찼다네. 그리고는 스스로 물었다네.
"속이 시원하냐?"
"그래 시원하다."
"엉엉 울고 싶겠지?"
"그래, 엉엉 울고 싶다."
그러자 울음소리가 천지를 가득 메워 마치 종소리와 경쇠 소리가 울리는 것 같고, 흐르는 눈물은 앞섶에 뚝뚝 떨어져 큰 구슬 같은데, 눈물을 드리운 채 눈을 들어 바라보면 빈산엔 사람 하나 없고 물은 흐르고 꽃은 절로 피어 있었다네.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 박지원, <연암을 읽는다> 280쪽에서 재인용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다지도 슬프고 원통한 일이란 말인가? 내가 내가 아니게 되고 나의 존재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박지원의 표현을 보아 느끼자면 천하에 비할 바 없는 슬픔이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나 혼자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사람조차도 그 모습을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나의 모습을 만들어 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와 나의 주변, 나와 사람들, 그들이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 준다.
뜻하지 않게 어떤 이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이를 안다는 것을 그 이는 평생 몰랐으리라. 그러나 그 이의 삶을 문득 아주 약간이나마 지켜보았던 인연으로, 그 이의 참된 모습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이를 알았다는 사실이 내 모습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도 더불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