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쓰든 안 쓰든 손에 연필을 쥐고 있으면 설렌다. 왠지 색연필 드로잉을 하기 위한 운명인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하며 책을 넘기다 보니 자신감이 차오른다. 가로선, 세로선, 사선부터 시작해 달팽이집이나 꽈배기 같은 곡선 등 왕기초부터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사람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여러 장점 중 하나인 빨간 화살표가 나를 그리로 인도했다. 연필 쥔 손이 갈 곳을 찾지 못해 헤매지 않도록 빨간 화살표로 그리는 순서를 알려주어 따라그리기에 아주 편리했다.
또 이 책의 제목에도 나오듯 색연필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초코파이도 제조사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듯 색연필도 제품마다 발색이 다르다. 때문에 여러 색연필 브랜드의 다양한 특징을 살펴보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 바로 '발색표 만들기'다. 같은 색이라도 연하거나 진하게 칠했을 때 차이가 있으므로 원하는 색감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각 브랜드별로 1~3단계의 힘 조절을 했을 때의 발색표를 만들어 두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글 쓰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일을 즐기는 둘째 아이가 잠든 후, 아이의 책상 위에 있던 <쏠쏘라와 함께하는 색연필 드로잉 클래스>을 가져다 틈틈이 그림 연습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자연과 동물, 노는 일과 먹는 일, 너와 나를 사랑해야겠구나 하는 것이다. 개미 한 마리를 그리려고 해도 개미를 오랫동안 관찰해야 하는데 사랑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난을 겪은 끝에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했던 반 고흐가 떠올랐다. 그는 얼마나 오랜 시간 별이 총총 떠 있는 밤하늘을 바라봤을까. 그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행복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라며 오늘부터 나도 나만의 그림을 위하여 관찰하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대상은 먼저 나 자신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숲속이 떠오른다.
<쏠쏘라와 함께하는 색연필 드로잉 클래스>을 보며 손목의 강약 조절만으로도 한 가지 색을 사용해 세 가지 톤을 만들고, 기본색을 기준으로 한 톤 밝은 색과 한 톤 어두운 색을 이용해 블렌딩하면 색감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가진 초록색 계열의 색연필을 모두 꺼내고, 노란색과 갈색도 몇 가지 더했다. 물론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단번에 완성할 수는 없겠지만,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계속 칠해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리라 믿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도 그리는 사람. 그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