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존감 - 2025 제2차 오디오북 제작지원사업 선정
전미경 지음 / 카시오페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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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 인생의 4분의 1을 엄마로 살고 있다. 그 시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나 혼자 살았던 시간이 진짜 있었던 건지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결혼 전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해가 갈수록 경력이 쌓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엄마'로서의 일상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 예측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날들 속에서 나뒹굴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등 뿌리채 흔들리는 질문이 불쑥불쑥 솟아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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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존감>.

몇 번이고 책 제목을 소리내어 말해 봤지만 엄마로서의 자존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 책의 시작 부분에 '엄마의 자존감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가 나와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가끔 그렇다, 자주 그렇다, 매우 그렇다로 대답해야 하는 문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왠지 이번에는 동아줄 잡는 심정이 되어 내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결과는 100점 만점에 73점. 대체로 안정적이지만 몇몇 영역에서 보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10점 이하인 영역이 있다면 그와 관련된 장을 먼저 읽어보라고 추천해서, 7점이 나온 1장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작아지는 날들' 부터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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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개념을 말했습니다. 이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필요에 충분히 반응해 주는 엄마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조금씩 실패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는 존재이며, 아이는 그 틈에서 세상의 현실을 배우고 조금씩 단단해지는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죠.

엄마의 자존감,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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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여러 모로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이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극 정성을 다하는 나의 엄마를 보며 한 번씩 삐뚤어진 마음이 들곤 한다. 치, 나한테는 그렇게 안 해줬으면서.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지만 나는 곳곳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랐다. 학부모 참관 수업 같은 건 당연히 안 되려니 하고 아예 말도 안 꺼내봤다.

언젠가 빙 둘러앉아 할머니표 국수를 먹다가 아이들이 저희들의 엄마인 나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나의 엄마가 한 마디했다.

"너희 엄마는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컸어."

순간 나는 참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어떻게 컸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대로 다 했어? 엄마가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엄마 인생 산 거지, 내가 언제 하고 싶은 걸 다 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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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나와 동생을 낳았다. 20대의 엄마는 나처럼 혼자 여행도 못 해봤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책 볼 시간도 없었다. 그저 오직 엄마의 몸에서 나온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을 것이다. 그건 나와 동생이 직접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그저 각자의 생활비를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됐다. 매일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아 보니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새삼 와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사춘기의 곳곳에 남아 있는 엄마의 빈자리와 손길, 다정한 말 한 마디는 여전히 나를 삐딱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그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현실에 적응하려 애썼고, 덕분에 많은 일을 나 스스로 해결해 왔다. 그 과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다른 엄마이고 싶었다. 아이들이 하교 후 나처럼 빈 집에 들어서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나에게 필요했던,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 반겨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런데 그 선택이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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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정답'과 '해답'을 구분해야 합니다.

정답은 단 하나만 존재하고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마치 수학 문제 풀이와도 같은 것이지요. 반면 해답은 개별적 맥락과 상황,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실제적 해결책입니다. 육아에서 정답 하나만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 무리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의 자존감,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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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까지만 해도 나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정답은 '일하는 엄마보다 집에 있는 엄마가 더 좋은 엄마다.'였다. 다른 상황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들은 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또 그 또래 일하는 엄마와 살며 제 살 길을 찾아나선 아이들과 비교해 보면 나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정답에 맞지 않는 나날이 계속될수록 나의 젊은 엄마가 떠올랐다. 아마 그때의 엄마는 자존감 같은 걱정을 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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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법입니다.

엄마의 자존감,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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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이 있다. 세상 모든 일에 적용되겠지만 '애바애'라는 말로 육아의 전반에도 크게 들어맞는다. 저자의 표현대로 매일을 '복사'하듯 버텨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은 점점 빛을 잃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어릴 때부터 혼자 쌓아온 책임감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저자는 아이를 위해 나를 버릴수록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텅 빈 물병을 가지고는 목마른 아이에게 물을 줄 수 없듯이, 자존감이 바닥난 엄마는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은 평생을 엄마로 살아내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일은 비어가는 물병에 물을 채우는 일이다. 병째로 아이에게 줄 것이 아니라 내 마른 목도 축이며 지내다 보면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난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한 번 엄마도 영원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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