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여러 모로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이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극 정성을 다하는 나의 엄마를 보며 한 번씩 삐뚤어진 마음이 들곤 한다. 치, 나한테는 그렇게 안 해줬으면서.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지만 나는 곳곳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랐다. 학부모 참관 수업 같은 건 당연히 안 되려니 하고 아예 말도 안 꺼내봤다.
언젠가 빙 둘러앉아 할머니표 국수를 먹다가 아이들이 저희들의 엄마인 나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나의 엄마가 한 마디했다.
"너희 엄마는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컸어."
순간 나는 참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어떻게 컸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대로 다 했어? 엄마가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엄마 인생 산 거지, 내가 언제 하고 싶은 걸 다 했냐고!"
엄마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나와 동생을 낳았다. 20대의 엄마는 나처럼 혼자 여행도 못 해봤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책 볼 시간도 없었다. 그저 오직 엄마의 몸에서 나온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을 것이다. 그건 나와 동생이 직접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그저 각자의 생활비를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됐다. 매일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아 보니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새삼 와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사춘기의 곳곳에 남아 있는 엄마의 빈자리와 손길, 다정한 말 한 마디는 여전히 나를 삐딱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그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현실에 적응하려 애썼고, 덕분에 많은 일을 나 스스로 해결해 왔다. 그 과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다른 엄마이고 싶었다. 아이들이 하교 후 나처럼 빈 집에 들어서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나에게 필요했던,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 반겨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런데 그 선택이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