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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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계에 정명훈 마에스트로가 있다면, 과학계에는 정재승이 있다! 공연을 자주 보는 나는 리사이틀 보다는 오케스트라나 협연을, 솔로 싱어보다는 중창이나 합창을 더 좋아한다. 공연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다양한 악기나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룰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그 느낌! 코로나 어택으로 수 십명의 연주자가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은 언제 볼 수 있을지 요원한 가운데, 방구석 1열에서 과학과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미학, 의학이 만나 이루어 낸 감동적인 지식의 교향악을 만났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곡, 같은 오케스트라여도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그 날 공연의 성패가 갈린다. 알쓸신잡에서 넘사벽의 지식을 조곤조곤 논리적이고 재치있게 풀어내는 입담으로 감동을 준 정마에님은 이 책에서도 대중의 흥미를 불러 일으킬 만한 복잡한 사회 현상들을 물리학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의 지식을 자유자재로 지휘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만들어 주었다. 한 꼭지를 정리하는 마지막 부분에는 늘 우리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어 때로 뭉클하기까지 했다. 평생 불황인 출판업계에서 20년째 롱런하는 과학 교양서라니 이유가 있다.

특히, 나에게는 현대 미술, 아프리카 문화, 음악, 언어, 심장 박동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프랙털 현상을 다룬 2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잭슨 플록의 그림, 아프리카 전통 가옥의 구조, 클래식과 대중 음악, 심장 박동 등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것들이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니, 복잡한 세상도 이해할 만하다는 메세지가 단숨에 전달되었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때 화학과 생물이 선택하면서, 물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학문이었다. 그러나 이 복잡한 네트워크 세상에서 물리학이 일상 곳곳에서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니 조금은 친근해 진 기분이다.

클래식 공연을 보고 나면 가장 좋았던 곡과 작곡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알아보고, 다른 연주자의 연주도 찾아 듣고 비교하면서 여운을 즐긴다. 이 책은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교양서인 줄 알았는데, 성인이 읽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많다). 어떤 경로로든 조금씩 더 지식을 쌓고 여운을 즐기다 보면 어느 날 이 지식의 교향악을 좀 더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시기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갑자기 머피의 법칙이 속출하는 날, 교통 체증에 짜증이 치미는 날, 레스토랑 소음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날. 이 책을 다시 한 번 들춰보면 머리 속이 맑아지고 기분이 정화될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복잡한 세상에 관한 과학자들의 긴 연주에 “브라비”와 함께 격렬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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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 오늘도 국가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영지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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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공무원스럽다’는 말. 이제 11년차 지방행정 7급 공무원인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법령과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이고 방아적으로 비치는 태도.... - 프롤로그 중

아닌게 아니라 나 역시 은연 중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위와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11년차 공무원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힌 ‘공무원스럽다’는 부정적인 인식 대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공무원’이라는 직장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공무원이라는 또 다른 직업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하여 요즘처럼 공무원들의 노고가 두드러졌던 시기가 드물었기에 진짜 공무원이 이야기하는 공무원의 삶이 어떤지 궁금하여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2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왜 공무원은 편하게 일한다고 생각할까> 에서는 여느 직장과 다를 바 없는 공무원의 일과 문화의 단편들을 이야기한다. 솔직하게 1장을 읽는 동안 대체 ‘욱’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사이다 없이 고구마를 먹는 기분. 튀면 (독특하면) 왕따가 되고, 회의 시간에는 직급에 따라 발언권 순서가 정해져 있고 심지어 말단 계급은 발언권 조차 없으며, 여전히 송환영회 같은 회식을 하면서 건배사를 외치고, 학연과 지연이 중요하며, 사모임조차 연줄을 만들기 위한 네트워크라니. 민간 기업에도 여전히 이런 문화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내 직장 생활과 [90년생이 온다] 같은 책에서 본 요즘 트렌드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공무원에 대한 편견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물론 공무원이 편하게 일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지만 말이다.

2장 <공무원, 느리지만 확실히 변하고 있다> 에서는 제목 그대로 여전히 보수적인 집단이지만 저자를 비롯한 젊은층의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그 사회와 문화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출근할 때 아침 인사를 나누고, 업무 시작 3분전 음악과 함께 스쾃을 하고, 민원실에 음악이 흐르고,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 민감한 공적 사안을 다루는 일이 많고, 오랫동안 이런 직장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적체되어 있기에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한 15년 전에도 이미 이런 문화가 자연스러웠던 민간 기업을 생각하면 이것도 변화인가 싶지만, 오랜 그들의 문화를 고려한다면 큰 도전이고 이런 작은 변화들이 균열을 일으키다 보면 언젠가 조직의 흐름 자체가 크게 변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겉으로 마주하는 공무원 대신 실제 공무원이 이야기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일부 들여다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공무원도 직군이 다양하고 모든 조직이 동일한 문화를 갖고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에 비하면 한 없이 느리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중심으로 조금씩 유연한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특히 지난 4월에 치뤄진 코로나 팬데믹 속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얼마나 수 많은 공무원들의 노고와 희생으로 지금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다양한 비상 소집에 응당 대응해야 하고, 이런 비상 시국에 직장인으로서의 권리를 내세울 수 없는 공무원은 절대 편한 철밥통 직업이 아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일명 선진국보다 훨씬 발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공무원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 공무원이 직업 목표인 수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조금 더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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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詩국에 방구석 신혼여행
천지혜 지음 / 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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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판사의 책 소개가 정말 찰떡이다.

“시가 아닌 시를 읽는다. 웃고 울고 즐거워하며 노여워하다가 여행을 마친다. 책을 덮는다. 그것이 여행 실종 시대에 출판사 방과 천지혜 작가가 제안하는 대안적인 여행이다.”

시와 많이 서먹한 사이이다. 응축된 언어를 풍성히 구성해 낼만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부재, 그리고 수적으로 열세인 텍스트에 대한 허전함이 그 이유이다. 시인도 이제 조금 시와 친해져 보려고 시를 썼다 하고, 대놓고 시가 아닌 시라 하니 시와 에세이 사이에 머무는 좀 더 직관적이고 친근한 시가 들어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여행이 너무 고프다. 떠나기 전 설레임, 마티나 라운지의 떡볶이와 생맥주, 비행 중 음주 독서, 낯선 공항의 공기, 심사숙고해 고른 숙소와의 조우, 익숙한 듯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 이 모든 것이 그립다. 미래의 여행을 계획할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 방구석 여행은 얼마나 신선한가. 그 여행이 궁금했다.

역사와 유머와 로맨스가 어우러진 궁중 로맨스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 애정해 마지 않는 이 궁중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참 많이 설렜는데,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신혼여행은 얼마나 달콤할까 싶었다. 시에서도 그 설레임을 느꼈으면 했다.

거창하지만, 이게 내가 이 시집을 읽은 아주 사적인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내 사적인 기대는 한껏 충족되었다. ‘이 시국’에 관한 시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방구석’에 대한 시를 읽으며 킥킥 웃었으며, ‘신혼여행’에 관한 시는 때로 설레고 때로 므흣했다. 비록 익히 알고 있는 아름답고 속 깊은 언어들이 모인 시들은 아니었으나, 시와 서먹한 시.알.못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 직관적이고 친근한 시들이 많았고, 텍스트 양도 허전하지 않을 만큼 충분(?)했으며, 방구석 여행도 글로 쓰니 별거가 되는구나 싶어 흥미로웠고, 작가의 신혼 생활은 소설만큼이나 반전있는 한 방이 있는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시국에방구석신혼여행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 #천지혜 #출판사방 #방구석여행 #신혼여행 #시집 #신간소개 #독서감상문 #책그램

서평단으로 선발되어 제공된 도서를 읽고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

🔖
저자: 천지혜
출판사: 방
출판일: 2020년 7월 3일
가격: 12,000원
쪽수: 152
장르: 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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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리커버 산책 에디션)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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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100세 시대에 일찍 부터 노년의 삶을 그려보는 건 꽤나 유용한 일이 되었다. 무작정 살기보다 노년의 이상향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삶은 알맹이가 꼭 들어찬 옥수수처럼 훨씬 더 알차고 가치있는 삶일거라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년배인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여성이 쓴 이 에세이는 아주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텍스트 욕심이 그림에 대한 흥미를 밀어낸 사막같은 어른에게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는 부재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으나, 그림책은 삶의 방향을 구축하는 나침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첫 꼭지부터 호들갑을 떨 정도로,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어들 정도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무수하다.
• 그림책이 서서히 삶으로 스며드는 과정
• 성찰과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변화를 주는 삶의 태도
•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분자처럼 정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동적인 생활
• 대단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지도 않은 소박한 경험과 모험
• 비혼, 채식지향주의자, 집사, 프리랜서 등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다른 가장 자리를 이해하려는 마음
• 솔직하고 담백하고 단정한 문체 등등등등등

할머니 할아버지 공동체에서 너나 나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건은 결국 씩씩하게 자립할 수 있는 힘,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 끝없는 호기심과 색다른 경험과 모험을 향한 용기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생각해본다.

▫️ 나에게 사람 인의 두 획은 넓게 벌린 발이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한 사람의 다리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다가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걷거나 서로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도 안다 - p.70

▫️ 경험은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세계 - p.143

▫️ 내가 골몰하는 가난은 부자가 될 수 없어 서글픈 가난이 아니라, 가난해도 괜찮아서 가난하기로 마음먹은 그런 가난이다.... 덜 벌고 덜 쓰는 자급자족적 삶이고... 단순하고 풍요로운 자발적 가난이다.. 많이 버는 대신 많은 시간을 가지는 삶, 돈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사는 대신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기술을 익혀나가는 삶 말이다. - p.192
책을 다 읽고 줄친 부분을 한번 더 읽었는데 이걸로는 부족해서 필사를 해야겠다.

P.S. 이 책을 읽다보니 그림책에 숨은 뜻을 찾는 일은 복잡한 텍스트의 행간을 읽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그림책 읽는 것이 두려운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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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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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망치보다는 가느다란 몽둥이로 자근자근 뼈를 때리며 반성문을 쓰게 만드는 책.

책을 읽는 동안 탄탄한 저널리스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물음들이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생각, 말, 행동이 자신과 타인, 사회에 무례하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뒤돌아보게 했다. 아무리 각자도생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정말 나 혼자 잘 살면 그만일까? 나 혼자 잘 산다는 게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를 잊고 있었던 건 아닌가?

작년 비문학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였던 김영민 교수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널리스트 버전이라고 부르고 싶다. 너도 나도 힘들다 죽겠다 외치니 공감으로 마음에 위안을 주는 에세이가 주류가 된 요즘이지만, 가끔은 냉철한 말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일깨워주는 책이 장기적으로 우리 삶에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믿는다.

오랜만에 이른 아침에 밑줄 그은 문장들을 노트에 옮겨적고 정리를 했다. 엄지혜 작가님의 <태도의 말들>을 내가 쓴다면 담아 두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간혹 드러나는 정치색이 불편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충분히 객관적으로 필요하며 논리적으로 타당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문장 중, 피해자 환원론과 관련하여 인용된 자살 미수 청년에 대한 판결문이 너무 뭉클해서 남겨본다.

P.59.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런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 2019고합 241 판결문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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