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깊이 - 공간탐구자와 함께 걷는 세계 건축 기행
정태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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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하는 행위에 누구보다 부지런하지만 여행 준비에는 한 없이 게으른 여행자다. 초보 배낭여행자 시절에는 A4 용지 수십장을 꽉꽉 채워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준비하면서 보고 듣고 읽은 내용을 직접 확인하며 체크리스트를 완료하는 숙제 같았다. 때문에 어느 시점부터는 여행 준비를 최소화한다. 여행할 장소보다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물론 언제 어디서나 구글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믿는 구석도 없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최소한의 여행 준비 방법에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랜드마크나 명소가 아닌 아는 사람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호텔 앞에 두고도 매번 그냥 지나친 시애틀 공립 도서관이라든가, 열흘씩 머무르면서도 존재조차 몰랐던 포르투 레싸 수영장이라든가. 모르긴 몰라도 그 동안 모르고 놓친 가치 있는 건축물들이 수도 없을테다. 대도시 여행이나 건축 기행에서 만큼은 “아는 만큼 보인다” 가 진리이자 필수 조건이다.

<도시의 깊이>는 작은 진료 공간에서 더 작은 입 속을 들여다보던 치과 의사가 돌연 건축 유학을 떠나 넓은 세상 곳곳에서 만난 건축물과 도시 공간을 다섯 가지 논점으로 구분하여 인문학적으로 때론 여행기처럼 풀어낸 이야기다: 헤테로토피아, 현상학, 구조주의, 바이오미미크리, 스케일. 물론 그 간 여행하면서 이미 만나 본 건축물이나 도시 공간도 있었고 미처 접할 기회가 없었거나 최근에 새로 생긴 것들도 있었다. 알고 있는 건물이나 도시도 건축학적으로 분류해서 인문학적 시선으로 보니 새롭기도 하고 제대로 보지 못했단 생각에 아쉬움도 들었다. 당연하게도 다시 자유롭게 지구를 드나들 수 있는 시절이 오면 가보고 싶은 도시와 건축물 리스트도 생겨났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단연 빙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책에서 제시한 분류는 저자의 관점대로 분류했기에 절대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종종 분류로 인한 혼동이 있었으나, 어차피 건축물과 도시 공간이 우리의 삶과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분류 자체가 큰 의미가 있지 않다고 느꼈다. 그 보다는 건축물이나 도시 공간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삶과 사회와 연결시켜 볼 줄 아는 안목 자체가 도시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부여해 줄 수 있기에 더 중요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우선 건축 기행이라는 부제처럼 인문학적 여행을 표방하고 있지만 인문학적 요소에 좀 더 집중되어 있기에 가끔씩 등장하는 여행기적 요소가 글의 흐름을 깨곤 했다. 분류도 그렇고 글의 흐름도 전반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한 느낌이랄까. 또 한 가지는 삽입된 사진 자료에 대한 아쉬움이다. 건축이라는 주제 특성상 해당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진이 중요한데, 직접 촬영한 것이라 그런지 상당 수의 사진들이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어두운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옆에 아이패드를 두고 이미지를 구글링 하면서 이 점을 보충했다.

몇몇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최소한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현 시점에 인문학적 시선으로 쓰여진 글과 구글이 보여주는 그 곳의 시진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간접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에도, 눈으로나마 잠시 랜선 여행을 떠나는 기쁨을 누리기에도, 언젠가 다시 떠나게 될 숨간을 기다리며 미리 여행 계획을 세워 보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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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역사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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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대륙에 토착민들이 살던 시기부터 유럽인이 도착해 식민지를 세우고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강국을 만들어 과는 과정을 ’장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이 사회가 얼마나 비장애 중심인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자들의변론 을 읽고부터였다. 돌이켜보면 장애인들이 받는 노골적인 차별과 미묘한 분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지만, 애초에 장애란 무엇이며 그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고 오늘 날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장애  vs. 비장애라는 구분 자체가 내 머리 속에 원래 존재하던 것이었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수 많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담고 있어 쉽지는 않았지만, 장애의 관점에서 미국의 역사를 본 것은 처음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미국의 역사를 장애라는 렌즈를 두고 재구성한 것이기에 우리 사회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애라는 개념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우리 모두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과거처럼 조화와 호혜를 강조한다면 서로 의존하며 더불어 살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장애인 공동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미국 사회는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허나 글로벌 시대에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정책이나 문화가 전세계적 흐름에 빠르게 영향을 미치는 바, 이러한 흐름들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비장애중심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램이다.

🔖 미국의 역사는 국가라는 집을 만드는 시간에 대한, 때로는 악랄하고 때로는 영광스러운, 논쟁적이고도 경이로운 이야기다. 장애인은 그 이야기의 필수적인 부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나의, 우리의 당신의 집이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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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 - 하루 한 장 내 마음을 관리하는 습관
스칼릿 커티스 지음, 최경은 옮김 / 윌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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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위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 보았자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주는 동질감과 실전에서 우러나온 위로와 조언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여기 우울감을 비롯하여 바닥까지 치고 올라온 70여명의 사람들이 있다. 샘 스미스, 나오미 캠벨 등 익숙한 이름들도 보인다. 대부분 겉으로 보기에 제법 화려하고 괜찮은 삶을 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이 내밀한 자신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렇게 말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크게 외쳐도 괜찮아”, “연약해도 괜찮아”, “도움을 청해도 괜찮아” 그리고 “괜찮을거야”.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스칼릿 커티스는 17세에 처음으로 미쳤다는  말을 들었고, 3년간 상담을 100차례 받았으며, 다섯 가지 약을 복용하고, 50번의 신경 쇠약과 98번의 공황 발작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기꺼이 마음에 새길 만한 ‘괜찮다’는 믿음을 깨달았다. 심리학이나 정신과학에 기반한 내용이 아니어서 부담스럽지 않다. 여전히 심각하고 진지하며 조심스러운 문제지만 실제 문제를 겪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극복 과정을 통해 동질감과 심리적 위로를 건네는 방식이기에 ‘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일 수 있다. 우울한 감정이 찾아올 때,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꽤 실용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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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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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 소설은 다 읽고 났을 때 독자 스스로 그 책을 읽기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는, 그런 황홀한 기분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라는 천명관 작가의 평 만으로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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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 때 - 수술실에서 찾은 두뇌 잠재력의 열쇠
라훌 잔디얼 지음, 이한이 옮김, 이경민 외 감수 / 윌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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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 있을까? 우리는 왜 잠을 자고 수면이 왜 중요할까? 머리에 좋은 음식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도 건강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는 없을까?  손상된 뇌가 회복될 수 있을까? 평소에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나는 목차를 보는 순간부터 이 책이 흥미로웠다.

저자인 라훌 잔디얼은 신경 외과 전문의이자 신경 과학자로 수 많은 뇌를 열어 직접 그 안을 들여다 보았고, 뇌 질환 치료에 기여하고자 뇌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실전과 이론을 고루 갖추었으며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의 나이로 이러한 책을 쓰기에 가장 적절한 연륜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다. 이제까지 읽어본 뇌과학 분야 책 중 가장 ‘교양서’에 가깝다고 본다. 특히 장마다 나오는 ‘뇌, 딱 걸렸어’ 코너에서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신경과학적 낭설들을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조곤조곤 반박해 주고, ‘괴짜 신경과학의 세계’ 코너에서는 일반인이 알기 어렵지만 궁금해할 만한 신경 과학의 다양하고 고무적인 면들을 알려 주었으며, ‘두뇌 운동’ 코너에서는 실용적인 조언들을 제안해 주는데, 그야말로 재미와 지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할 수 있다.

나는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에 대한 두려움 내지 공포가 있다. 말하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업무 중 직관적 로지스틱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서 ‘두뇌 운동’ 코너를 읽노라면 당장 실생활에 적용해서 두뇌 활동을 늘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또한 이 책의 핵심인 뇌 건강이 스스로 관리하는데 달려 있다는 것과,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으로 뇌가 위축된다고 라서 정신까지 위축되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는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덜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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