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리커버 산책 에디션)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바야흐로 100세 시대에 일찍 부터 노년의 삶을 그려보는 건 꽤나 유용한 일이 되었다. 무작정 살기보다 노년의 이상향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삶은 알맹이가 꼭 들어찬 옥수수처럼 훨씬 더 알차고 가치있는 삶일거라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년배인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여성이 쓴 이 에세이는 아주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텍스트 욕심이 그림에 대한 흥미를 밀어낸 사막같은 어른에게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는 부재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으나, 그림책은 삶의 방향을 구축하는 나침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첫 꼭지부터 호들갑을 떨 정도로,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어들 정도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무수하다.
• 그림책이 서서히 삶으로 스며드는 과정
• 성찰과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변화를 주는 삶의 태도
•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분자처럼 정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동적인 생활
• 대단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지도 않은 소박한 경험과 모험
• 비혼, 채식지향주의자, 집사, 프리랜서 등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다른 가장 자리를 이해하려는 마음
• 솔직하고 담백하고 단정한 문체 등등등등등

할머니 할아버지 공동체에서 너나 나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건은 결국 씩씩하게 자립할 수 있는 힘,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 끝없는 호기심과 색다른 경험과 모험을 향한 용기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생각해본다.

▫️ 나에게 사람 인의 두 획은 넓게 벌린 발이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한 사람의 다리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다가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걷거나 서로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도 안다 - p.70

▫️ 경험은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세계 - p.143

▫️ 내가 골몰하는 가난은 부자가 될 수 없어 서글픈 가난이 아니라, 가난해도 괜찮아서 가난하기로 마음먹은 그런 가난이다.... 덜 벌고 덜 쓰는 자급자족적 삶이고... 단순하고 풍요로운 자발적 가난이다.. 많이 버는 대신 많은 시간을 가지는 삶, 돈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사는 대신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기술을 익혀나가는 삶 말이다. - p.192
책을 다 읽고 줄친 부분을 한번 더 읽었는데 이걸로는 부족해서 필사를 해야겠다.

P.S. 이 책을 읽다보니 그림책에 숨은 뜻을 찾는 일은 복잡한 텍스트의 행간을 읽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그림책 읽는 것이 두려운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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