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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우리가 알지 못한 유럽의 속살
원종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책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저자'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저자에 따라 책을 살 것인지 읽을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만약 모르는 저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경우에는 우선 '제목'과 '부제'를 보고 저자 소개와 책 소개를 읽는다. 목차를 확인한 뒤에 먼저 읽은 사람의 서평이 있다면 서너 개 정도 읽고 결정한다. 그러다 가끔 실제 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서점을 찾는 경우가 있다. 그런 어느 날, 다른 책을 보러 갔다가 책 제목만으로 충동적으로 선택한 책이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유럽편>이다. '대체 얼마나 삐딱하길래?'하고 집어들었지만 읽은 건 조금 지난 후이다.
저자인 원종우 씨는 <딴지일보> 전 편집장이자 <딴지일보> 현 논설위원으로 인터넷 상에서 유명한 분이란다.(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책 두께가 만만치 않아 선뜻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한 챕터씩 읽다보니 어느새 다 읽어버린 책이었다. 본문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처럼(저자가 인터넷 상에서 유명한 분이라기에) 비속어나 유머에 편중된 글이 아닌 제목 그대로 '세계사 - 유럽'을 보다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책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금지곡과 겸열에서 드러나던 문화적 폐쇄성과 무지, 정치적 탄압과 독재에서 비롯된 자유의 제한, 새롭고 창조적인 것에 대한 방어적인 보수성,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불편함과 억압, 이것들이 통틀어 전근대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중략) 그리고 전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정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상적 제도적 바탕이 만들어진 유럽과 서구 문명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현재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런 사상이나 제도적 바탕은 유럽과 서구 문명에서 만들었기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본서를 전형적인 역사서라 말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 읽어보니 전형적인 역사서와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이 아니고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많은 부분에서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 주관적인 느낌과 해석을 덧붙인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바로 그 장소에 있지 않지만 그런 일을 본 것처럼 화면을 구성하듯이 그림 그리듯 글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역사서와 다른 점으로 보다 인간적이면서 적나라한 표현 방식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저자가 캐나다, 영국, 유럽 등지에서 생활하며 겪고 느꼈던 일들을 각 챕터 마지막 부분인 '현대 유럽 이야기'에서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본문보다 흥미진진하고 생각해 볼 내용이 많아 더 재미있게 읽었다.
유럽을 이야기 할 때 로마 문명, 기독교, 중세, 십자군,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히틀러, 나치, 홀로코스트 등은 빠지지 않는다. 이 책도 이런 일련의 사건을 시간 순으로 배치하지만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기 보다는 이면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서술하는 방식이다. 또한 역사에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저자의 다른 관점도 새롭다. 제목처럼 '삐딱한' 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의' 세계사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저자는 책 전반에 '이성을 통한 근대정신의 달성'을 강조했다. 인류가 지금껏 해왔던 악한 행동을 비판하고 응징하되,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들여다보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 그 누구도 그다지 선하거나 훌륭하지 않으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역사와 사회의 교훈을 배워나가야만 인류가 추구했던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 어딘가는 전쟁 중이고 그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돌게 되고, 그렇게 미움과 증오는 이어진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어디까지나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서로 다른 의견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와중에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프로그램이다. 다르고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 임을 인정하는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현실과는 다른 가상의 모습일지라도 그 속에서 인류가 함께 가는 길을 꿈꿔본다.
본문 중에서
삶의 여유는 단지 토요일에 쉬는 식의 기계적인 방법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이런 정책들은 사회 전체의 여유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끌개에 불과하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여유가 사회 전체에 공유되는 것이다. 내가 시간적 금전적인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늦춘 템포를 일이 돌아가는 속도의 기준으로 삼고 비용을 지불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일의 속도도 느려지고 돈도 더 내야 한다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사회 전체에서 공유된다면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34p.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소화하지 못하는 문명은 저열하다. 서로 간에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대화와 양보로 조정하지 못하는 문명은 천박하다. 그러나 소화하지 못하거나 조정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총칼을 앞세워 상대를 파괴하려는 문명은 저열함과 천박함에 더해 잔인하고 위험하다. 이런 자들이 강력한 폭력의 권능을 가졌을 때 인류의 미래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131p.
비판해선 안되는 대상은 없지만 마음대로 증오해도 되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었을 때 우리는 쉽게 증오 자체의 포로가 되고 만다. - 140p.
문명적 진화에 있어서의 적자생존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가 만들어 낸 문명의 틀에 우리 자신이 적합한 자인가 그렇지 못한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 214p.
(중략) 소명의식과 오만함 사이를 넘나드는 이른바 선한 힘의 부정적인 속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제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것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어떤 개인도 체제도 계급도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없고, 명분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런 믿음을 갖는 순간 모든 것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슈퍼맨은 존재할 수도 없지만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나는 '초인의 오류'라고 부른다. - 330p.
모든 인간의 완전한 평등 달성이 가능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주의는 무한 평등과 전적인 획일화를 추구하는 사상이 아니다. 사회주의가 주창하는 것은 재능이나 직업에 구애받지 않는 경제적 사회적인 평등이며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사회다. - 38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