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활발하게 활동한 무대인 온라인 세상을 잠시 멀리했다. 대개의 아기 엄마가 그렇듯 아기를 키우면서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를 자유롭게 다룬다는 건 하늘에 걸린 달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기의 시간표를 따라가다보면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아기 엄마인 '나'만 덩그라니 남아있게 된다. 그래도 아기가 자라면서 일정한 시간표가 형성되면 엄마에게 아주 잠깐의 휴식 시간이 허락된다. 바로 아기의 낮잠 시간이다. 이 황금같은 시간에 밀린 집안 일을 하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책을 좋아하고 있었나보다.
최근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이런 독서열에 시발점이 된 책이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라는 카프카의 글을 인용한 문장에서 내 머릿속 울림이 시작됐다. '머릿속 도끼질의 흔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는 저자는 자신의 독법인 '책을 들여다보며 읽기'를 이 한 권에 아주 빼곡하게 써내려간다. 게다가 조곤조곤 말하는 듯한 문장이 설득력까지 있으니 넘어가지 않고는 견뎌낼 자신이 없을 정도다.
지난 2011년 저자가 진행한 강독회를 책으로 엮어 마치 강연장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강연 중에 소개한 책을 각 챕터의 마지막 장에 배치해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며, 간혹 보이는 저자의 친필 메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책을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눌러 읽으면 어떤 것이 보이는지 차분히 설명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로 끄덕이고 있는 걸 발견하면서 저자는 역시 '광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독법을 천천히 설명하며 '이렇게 읽으면 저렇게 좋으니 당신도 이렇게 하는게 어떻겠어요?'라며 설득하니 '작가의 다음 책을 또 사야겠군!'하고 설득당해 버린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판화가 이철수를 새로 알게 되었고, 소설가 김훈을 다시 보았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야겠다 다짐했으며 <지중해 오디세이>를 흘려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사라진 적어가며 읽기도 다시 진행 중이다. 학생 때부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수첩에 적어두곤 했는데, 이러저리 치이다 보니 손으로 꾹꾹 눌러 쓰는 기쁨을 잊고 있었다. 다시 수첩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으며 날림체를 실천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즐겁다.
워낙 인기가 많은 책이고 유명한 저자이니 추천의 말을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책을 들여다보면 어떤 것이 보일지 궁금'하거나 '박웅현이 왜 유명한 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나 또한 박웅현이 왜 그렇게 유명한 지 궁금해서 읽은 1인이다.
고은을 읽고 나면 김훈과 유홍준, 미셸 투르니에가 떠오릅니다. 좋은 책들은 다 서로 돌고 돌아 감성을 전달하고 무뎌진 안테나의 주파수를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공감이 되는 좋은 구절을 발견하셨다면 꼭 찾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167p.
"여행지에서 그렇게 만났다가 그렇게 떠나 보낸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일생이 한갓 여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행길에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한다.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 준다." - 187p, 책 속 문장 재인용.
창의력이라는 건 무심히 보지 않고 경탄하면서 보는 것이죠. 집중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겁니다. 앙드레 지드는 시인의 재능이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 193p.
 

그냥 읽었다고 얘기하기 위해 읽는 건 의미가 없어요. 단 한 권을 읽어도 머릿속의 감수성이 다 깨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겁니다. - 3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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