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짓말이 아니야 ㅣ 미세기 고학년 도서관 8
이와세 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미세기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루이는 엄마 아빠 빼고는 누구하고도 말을 하지 않는다.
루이는 반 친구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쟤는 분홍색 아이' 쟤는 검정색, 쟨 회색, 투명한 색 등으로 나누고,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엄마 아빠랑 이야기는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어느 날 다니가와라는 전학생이 온다. “아버지는 동물생태 학자로 외국에 계시고 나는 여기 할머니 댁에 잠시 머무는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다니가와. 다니가와는 반 친구들에게 생태학자인 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신기한 곤충과 동물, 탐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빠랑 태평양 산타클로스 섬에 있는 다윈연구소에 간 적이 있어. 코끼리거북은 코끼리가 탈 수 있는 만큼 클 줄 알았지? 아냐, 크긴 한데 그렇게 크진 않아. 세상에 단 한 마리밖에 안 남은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은 혼자라서 외로워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가. 그 녀석 기분, 알 것 같긴 해. 불쌍하지 않아? 마지막 남은 한 마리라니 말이야.”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며 다니가와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면 부모님이 계신 아프리카 알제리로 떠날 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다니가와를 선망한다.
전학 온 다음날 다니가와는 루이에게 다가와 말을 붙인다. 너, 아무하고도 말 안해? 나하고는 이야기하자! 마음이 내킬 때만 하면 돼. 그런 며칠 뒤 다니가와는 루이에게 어떤 부탁을 해온다. 그것을 계기로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는 루이지만 다니가와하고만은 술술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니가와 역시 혼자만의 비밀(울타리가 기울어진 집,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얼굴 등등)을 조금씩 루이에게 털어놓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은 다니가와의 말의 의구심을 품는다. 때로는 ‘너네 아버지와 국제전화로 통화를 해보자’며 다그치기기도 한다. 궁지에 몰린 다니가와는 자기가 하는 말들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점점 다니가와를 비웃으며 코너로 몰아붙인다.
사실 다니가와가 반 친구들에게 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다.
엄마는 애인과 살기 위해 다니가와 남매를 버리고 가버렸다. 다니가와는 허름한 단칸방에서 여동생과 단둘이 생활하고 있다. 엄마가 가끔 들러서 약간의 생활비를 주고 가긴 하지만, 다니가와는 동네 슈퍼에서 알바를 해야만 겨우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니가와는 학교에서 반 친구들에게 모험과 상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늘 쾌활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던 거였다.
다니가와는 왜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까.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게 되는 것 같아. 난, 돌아가는 길을 몰라서 여기서 쉬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기가 여기가 아닌 먼 나라에 사는 친구 집이어서 친구가 돌아오기를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들어.”
아마도 지금 발등에 떨어진 이 현실이 진짜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엄마에게서 버림받음. 동생과 단둘이 남겨짐. 날마다 먹을 것을 구해와야 함. 내일이라도 당장 시설에 보내질 수도 있음……. 5학년 다니가와의 일상은 이토록 무겁고 불안하다. 그러니 마음만이라도 여기가 아닌 아주 먼 곳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동물생태 학자라는 멋진 아빠. 그에 걸맞는 엄마. 부모님을 따라서 브라질 스리랑카 아프리카 알제리 사막을 여행하는 자신…….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가공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다니가와는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루이는 늘 별을 생각보고 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본다. 언젠가 반드시 우주를 여행할 거라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런 루이가 다니가와라는 낯선 별의 비밀을 깨닫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그 별을 이해하기까지 오해와 갈등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성격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다니가와의 그 마음을, 그 세계를 통째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브라질, 스리랑카, 아프리카 알제리 사막을 여행하는 다니가와가 진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루이와 다니가와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갈 수 없는 우주)’를 공유한다.
마음으로 보는 세계(은하계에서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까지도)를 같이 본다.
그리고 루이는 다니가와의 집에 다녀온 후(다니가와가 어떻게 사는지를 알게 된 후) 이제껏 자신이 당연시하며 누리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잘사는 건 아니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다 제자리에 있는 집안살림, 엄마의 손끝에서 반짝이는 가재도구, 엄마 아빠라는 크고 넉넉한 존재, 그들의 아낌없는 사랑……. 비로소 자신이 당연하다는 듯 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한 감사의 눈을 뜨게 된다.
엄마가 애인과 완전히 잠적해 버리고 아무도 도움 주는 이가 없자 다니가와 남매는 결국 시설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다니가와는 여전히 밝은 낙천성으로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을 루이에게 보여준다.
“아빠랑 아프리카에 간댔잖아.”
“그랬지. 가고 싶어. 하지만 아프리카가 아니어도 돼. 어딘가 드넓은 땅이 있고, 하늘이 넓고, 바람이 쌩쌩 부는 곳, 몽골이든 오스트레일리아든파타고니아든 어디든 좋아. 언젠가 그런 데서 양이나 말이나 개나 그런 동물이랑 같이 살고 싶어. 어쩌면 그렇게 못 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그런 데가 있다고 믿거든.”
다니가와와 참 잘 어울린다고 루이는 생각했다. 언제나 등쪽의 웃옷이 바람에 부풀려 있는 다니가와에게 초원을 달리는 모습은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어, 우는 거야? 왜 그래? 울 일이 아닌데.”
다니가와는 난처한 듯한 얼굴로 루이 앞에 섰다.
“여기저기 가는 건 괜찮아. 나는 어디서나 살 수 있고, 엄마도 틀림없이 다시 연락할 거야. 우리 엄마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질러 버릴 때가 많아. 하지만 잘못했다는 걸 알면, 우리가 걱정돼서 돌아올 거야. 난 알고 있어.”
이쯤 되면 다니가와의 근거 없는 희망에 루이는 물론 나까지도 역시 꼼짝없이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만다. 애인과 바람나서 애들이야 굶어죽든 말든 버리고 떠난 엄마지만, 그 엄마도 곁에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믿음을 주었던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며, 다니가와의 믿음대로 반드시 애들을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맨 끝에 루이는 말한다. 앞으로도 계속 다니가와를 기억할 것이라고. 어른이 돼서 어린시절의 기분이며 약속을 죄다 잊는다 해도 다니가와만은 기억하고 싶다고. 나도 그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