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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릴 적 눈이 내리면
여기 지음 / 월천상회 / 2021년 1월
평점 :
그림책 한 권이 아름다운 무성영화처럼 느껴진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마치 꽃이 많이 핀 날의 풍경처럼 따뜻하다.
이 이야기는 꼭 아빠가 아이를 끼고 앉아서 들려주면 좋겠다.
“아빠 어린 시절에는 이랬어.” “우린 눈이 오면 이렇게 놀았단다” 하고 아빠의 어린시절 얘기를 들려주면 아마 아이는 깜짝 놀랄 것이다.
“아, 아빠도 어린이였어?”
아빠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였고,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이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즐거워할까.
그림책이 영화보다 좋은 것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장을 넘기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내 마음대로 넘길 수 있다는 것이고 영화보다 짧다는 것이고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다는 것이고 한 권으로 온 식구마다 각기 원하는 때에 무궁무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옆집아이에게도 빌려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이렇게 눈온 날 이야기를 하고 나서 어느 날인가 크레파스를 꺼내 다같이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빠 어릴 적 눈이 내리면』에 그려진 풍경이 너무 그립고 좋아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걸 잊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어린 친구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슝슝 퍽퍽 눈싸움을 하는 와글와글 천국! 살아 있다! 표정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눈내린 날은 1천년 전에도, 1백년 전에도, 지금도 늘 어린이날이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두 팔을 벌리고 뛰어노는 아이들, 눈 위를 뒹구는 아이, 눈을 던지는 아이, 눈덩이를 굴리는 아이, 장독대에서 눈싸움할 준비를 하는 아이, 탕탕 발을 구르며 즐거워하는 아이…….
모두가 행복하다.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나도 행복하다. 한 권 더 사서 요즘들어 부쩍 말씀이 적어지신 할아버지께 선물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