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이동하 지음 / 세계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이동하의 소설집 『문 앞에서』를 읽고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건 책 뒤에 평론을 쓴 정호웅의 말처럼, 좋은 국어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듯 적확하고 정확한 문장들이 소설을 튼실히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문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맞춤법에도 어긋나는 문장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요즘의 소설현실을 비추어볼 때, 그 정확한 문장만으로도 하나의 성취를 이루고 있는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열편 남짓의 단편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90년대 들어 급격하게 바뀐 생활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정작 그 속도에 취한 채 아무 반성 없이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소시민적인 인물들이 작가의 분신으로 나타나 고민하고 있다.

작가가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인 듯하다. 정신없이 달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어느 낯선 곳에 서 있는 듯한 느낌. 그래서 문득 여기가 어딘지 낯선 세계 앞에서 갈길 몰라 하며, 그제서야 지나온 길들을 천천히 되짚는 과정으로 대부분의 소설이 구성되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의 호흡이 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다. 그래야만 이 인물의 삶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유장하다고도 느껴지는 그 느린 호흡 속에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또한 이 소설집의 특징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해답은 치밀한 이야기 구성에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적절한 위치 지정으로 자칫 지루하게만 흘러갈 수도 있는 단선적인 이야기들에 역동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다루어온 연륜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소설에서의 결론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완결된 구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명확하지 않은 채로,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으리란 추측이 어렵지 않은 채 종결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작가의 인생관을 노출시키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는 작가가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이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결론을 향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ㅡ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문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ㅡ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격려를 표하는 작가의 태도 속에서, 그 자신도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소설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진정성을 찾아나가는 모습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