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과 공학은 나라와 세계의 기틀을 바꾸는 기술이다. 인문학은 생각하며 인간이되고 서로가 인간으로 성장하며 인간을 만들어가는 기술이라면 공학은 인문학과 함께 힘쓰며 정말 인간다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실질적 도움을 주는 학문이 아닐까.2019년 코로나 사태이후로 3년간 펜데믹을 겪고 해제할때까지만 해도 기후문제가 아닌 바이러스 문제로만 생각했으나 극심한 한파와 폭염을 왔다갔다하는 기후이상을 온몸으로 깨닫고, 이것이 단순히 동물과의 매체감염 사건으로 보기에는 너무 가벼운 해석임을 깨닫는다.모든것엔 조사가 필요하고, 무엇이 유용하고 유용한것이 방해가된다면 그것을 없애는게 아니라 조금씩 바꾸고 비틀어보는 방향으로 의견을 나누며 실천해가야한다. 나는 그것을 비판과 수용이라고 배웠다.비판은 그저 평가가아니며 변화아이디어를 도출해야하고 수용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며 실천하도록하는 학문이다.사람들이 편안함과 삶의 안전함을 추구하며 평화롭지만 정적의 삶으로 나아가버렸고 누구도 리스크를 안고 가며 바꿔나가려 하지않는다. 단지 "아무일없이 지나가는 것"이 인생의 좋은 방향이다.과연 아무일없는게 좋은건가. 우리는 우리가 진보적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문화와 삶에대한 진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생활과 윤리의식, 기후운동에대해선 보수적일 뿐만아니라 매우 답보상태이다.시뮬레이션을 해서라도 리스크를 감안하고 연구해야한다, 그렇기에 Ai와 공학은 그에대한 기술을 안고 남몰래 국민이 리스크의 피해를 받지않고 혜택을 보게끔 자신들이 시간과 돈의 리스크를 떠안고가며 편의성을 제공하려하고있다.생각의 발전에는 인문학이 필요하지만 나는 이런점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안고가는 리스크와 시뮬레이션이 우리가 건네받고 실천하는 네비게이션이 될수있도록 다양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최근 내 역할이 과중하고 힘들다고 생각하여 나를 이해한다는 사람이 다시 역할을 강조하고 탓하니, 과중한 역할을 이해받지 못하고 강요받는다고 생각하고 욱해 서로 오해와 화를 불러일으킨 사건이있었다.나는 집밖에서부터 집안의 역할에대해 따지고묻는 전화에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도 기분이 나빠야했고 상대방은 내가 일방적으로 욱했다며 또 나는 나쁜사람이 됬다. 그 이후로 아프고 힘들다는 말 자체도 꼬라지얘기를 들으며 비하받아야 했고 나는 여전히 감정이 남아있다.그만큼 사랑하기에 이해받고싶고, 행동으로서 실천이 안되는 상황이 여러번 반복하다가 이런 일로 감정이 빵 터지면 먼저 터진쪽이 억울하고 눈물나는 상황이 되는것이다.나는 평소 나를 존중해달라고 하다가 비꼬기를 시전하며 이해를바랐지만 여전히 상대방의 행동은 변화가없다그 표현조차 나쁜 사람이 되는것이다인간관계란 그런것같다. 사랑하기에 이해받고싶고 사건의 장소와 시간, 인물에따라서 여기서는 이러면안되지 라는 나만의 법칙이 있는것이다.위로하는 심리학이라는 책 제목만큼, 어쩌면 상대방의 입장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기도했다.우리는 친한사이일수록, 깊은 사이일수록 끊어내지 못하기때문에 점점 상대에게 억울한 상황이 생기고 이 책의 내용처럼 "애증"의 존재로 변모하기도 한다.다양한 심리학자의 견해와 이야기는 지금 내 상황의 이해와,세대가 다른 상대방에 이해가 겹쳐 이 책을 읽는 순간은 간접적인 대화를 한 느낌이라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조금더 깊이 파고들어, 대화의 불씨가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수들로 인해 한순간에 소수로 전락해버린다는 것, 더군다나 인간을 무자르듯 정형화하고 구분하며 그룹화시키고 편견을 갖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모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자기나라와는 다른 다양함을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막상 한국에오면 평생 정형화 된적없는 여행자조차 무자르듯 정형화되고만다.그럴수록 한국에대한 편견에대한 골은 깊어질 것이고, 이민자들은 특히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된다.나는 이민자들을 보면 특히 정반대의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시달리는걸 생각했을때 목구멍에 사탕이 걸린듯 턱 막혀온다. 그리고 의문이든다. 왜 이런 한국을 사랑하지?아직 대한민국을 떠난적이 없는데도 여전히 내 나라를 사랑하지않나보다.내 국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땅조차 나를 품어줄 생각조차 안한다면 내가 낸 세금이며 내어준 존재가 대체 어떻게 소비된단말인가.중요한건 제도에 대해 느끼는 객관적인 차별이 아니라, 내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타향인으로, 외부인으로 분리된 내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나는 자국을 떠나 이 한국에 온 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이 자국에서는 그들의 다양성을 품으며 문물의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것을 걸러내는 마음을 길렀으면 좋겠다.
내가경험한 생각은 바다와 방파제의 관계였다. 방파제는 파도를 막아주지만 지나치면 바다의 생태계를 망친다. 하지만 방치하면 쓰나미가 온다. 방파제를 쌓는 기술자는 그 균형을 잘 잡아야한다. 게다가 바다마다 다르다.불규칙한 날씨때문에 방파제도 소용없을때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더 쌓으면 생태계를 망치고 방어기제가 된다. 인지왜곡과 반추는 덤으로 받는다.방어적인 태도는 일시적으로는 바닷물을 잔잔하게 만든다. 하지만 쓰나미가 오면 방파제도 같이쓸려와 더 큰 위험을 가져오지않을까.자기자신을 믿는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찍이 어릴때부터 자존감이 형성된 사람들이 그래서 대단한 면이 크다. 하지만 모든 자존감은 한번쯤 무너진다. 성장통이 빠르냐 늦냐의 차이일뿐이다.이 모든게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그런거아닐까, 집단생활을 해야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잘보여야한다. 경쟁을 해야하고 서로가 돈거래를하고 친목과 경계를 해야한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 우리의 본능과 사회적 특성인 인간관계가 우리를 피폐하게 만든다.우리는 인생을 통해 공부한다. 사실 이런문제는 겪어본결과 이럴때 어떡할지 저럴때 어떡할지보다는 큰 그림을 보고 읽어낼줄 알아야하는 문제다. 흔히 말하되 나무를 보되 숲을 봐야하는 문제다.어릴때는 남들이 많이보는 교과서로 마음공부를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겪는 심리적 문제에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지금의 나는 나를 관리하는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처음부터 그랬느냐하면 당연히아니다숲을 보기까지 십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흔히 정글을 해치고서야 무인도의 바다를 보는냥 생존을 하다보니 바다의 그림자라도 봤을뿐이다.교과서는 정석도있지만 참고서도있다. 참고서도 무조건 교과서를 정석으로 해석한다면 그건 말그대로 수학의 정석이다.수학의 정석으로 공부한들 엘리트가 아니면 소용이없다 그래서 우리는 인강을 듣는다, 이 한편으 책은 쪽집게 강의를 듣는듯했다. 놀라운건 내가 이겨내온 모든과정의 기승전결과 같았다. 내 뒤를 따라오는 마음훈련 후배들의 길잡이가 지금이라도 나와 다행이다
나한테 1년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일단은 반성부터하자 나는 죽고싶다했고 그걸 극복했지만 좋아하는 일에 죽을만큼 매달리지 못했으니까.베짱은 다짐에서, 결심에서 나오는게아닌 마지막으로 쥐어 짠 즙에서 발생하는것, 즉 능력이다.비전공자여도 해금을 켜는것은 결국, 내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것이, 아직도 마지막을 맞이할수 있을만큼 이 분야에 발을 담궜다고 자신할수있어서다.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4년을 공부한 전공자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열번찍었다면 누군가는 서른번, 오십번을 찍었기에 그 힘든 정글에서 내 집을 마련하고 이곳저곳을 헤매서라도 또 내 집을 옮겨 결국은 찾아가는 것이다.전공자가 아닌사람이 성공했다면 당연히 질투나지만 나는 아휴 그 큰 정글에서 잘해냈네 정도는 한번쯤 생각할 수 없는걸까.다짐이 서고 결심이 서고 행동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길이었기에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겐 마지막이기에 소중한 법.오늘한번 은한철도999에 들어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