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엇으로 회복하는가 - 더 나은 매일을 위한 희망의 철학
라르스 스벤센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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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희망은 필요한가, 희망과 '바람', '소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사후에 신에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희망이지만, 세계평화를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무실에서 둥둥 떠다니며 책을 보는 것은 '바람'이지만, 희망이 될 순 없다.

'낙관주의' , '비관주의' 정반대의 개념이지만, 낙관주의와 더불어 비관주의도 함께 품을 수 있다. 너무 희망만 품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낙관주의도 잘못됬지만, 무조건적인 비관주의는 세계와 인류의 재앙을 준다.

우리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의무적으로 낙관주의를 옹호해야 한다. 자신이 비록 비관주의라 할지라도, 낙관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누구나 내일이 더 낫기를 기도하며, 누구나 세계평화가 오기를 기도하고, 누구나 범죄가 사라지길 기도한다.

비관주의는 내일 기름값이 오를것이며, 핵무기가 떨어질수도 있고, 누군가 범죄로 죽을 수 있다고 예측하고 비관한다. 하지만 그걸 최소한 희망하고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재앙을 피하고 도덕을 실천할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희망은 누구나 품을 수 있을까? 나는 좀 다르다. 자신이 희망에 있어서 작은 기여를 해야한다. 오늘 하루 분리수거를 잘하고, 모두에게 감사할 줄 알며, 반려동물을 쓰다듬고, 좋은 댓글을 적어야 한다.

'희망' 이란 노력을 전제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과 1:1면담을 할 수 있는 건 노력을 해도 안되는 바람이지만, 내일 한명이라도 따뜻한 댓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건 희망이다.

나라고 희망을 느끼고 싶겠지만, 나는 최소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비관해왔다. 하지만 책을 보니 흑백논리에나 나올법한 비관주의는 아니었다.

나도 인생을 낙관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거라고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처럼, 도덕을 지키는 것처럼 그 최소한의 것들로 나는 희망을 품고 낙관주의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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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단순한 위안 이상의 것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상상이 불가능하다면 그 일을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희망은 행동의 필요조건이다. 희망을 잃으면 행동할 능력도 잃게 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는 시극 <속박에서 벗어난 프로메테우스의 해방> 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 희망이 파괴된 자리에서
희망하는 것을 만들어낼 때까지 희망하라. 』

희망은 세상을 마법처럼 바꾸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은 그런 변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 행동하게 만든다. 희망은 본질적으로 어떤 보장도 해주지 않지만 희망이 없다면 삶은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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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마음들 - 기대와 허상은 내려놓고 깊고 단단한 나를 만드는 심리 수업
한창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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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 세대에 대한 책을 읽게 되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일단 본인이 캥거루족이고 항상 제 몫을 해내지 못한다는 창피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딸노릇을 하니 내 몫을 받고싶고, 이미 지원받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는데 인풋 아웃풋이 모두 세고 일찍이 독립하시어 여전히 자식들을 부양하는 부모님들에게 할짓이 못되는게 아닌가 싶다.


청년세대가 워낙 힘들고, 자신의 처지가 납득이 안가며 힘들지만, 부모에게 자식이 독립하지 못하는 또다른 납득이 안가는 상황을 안겨줄 필요는 없을것같다.

부모자신도 상경 후 자신의 부모가 늙어가는 걸 보며 위로 아래로 치이며, 자신의 노후되는 건강마저 챙겨야한다.

부모, 자녀, 조부모 세대 모두 각자 자신의 몫을 다하며 안부인사만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일단 그 전에 나부터 조금씩 붙잡은 손을 놓으며, 자신의 몫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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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이란 '측은히 여겨 돌본다'는 뜻이다. 부모를 긍휼의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이라기보다 마음 수련이 필요한 이성의 영역이다. 그들도 자신의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고, 살아남느라 급급했으며, 정서적으로 성숙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잘못을 정당화할 이유는 아니다. 다만 '왜 우리 부모는 나를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라는 원망에서 벗어나 '그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이해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부모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_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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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대한 책을 서평단으로 자주 접하면서, 특히나 노령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 그리고 그들의 무게가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20대와 다르게 30대의 삶도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에, 여러 의사들의 30대에 대한 책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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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들
아페이 지음, 원녕경 옮김 / 정민미디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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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가져라, 자책하지 마라,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이런 단면적인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음처럼 안됬던 이유는 아마 말그대로 '희망고문'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조금은 따끔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단호하게 말해주는 작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래 그랬지 참, 구지 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항상 착할 필요는 없지 끄덕이게 된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긍정하며, 균형을 지킨다면 여타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것처럼 힘주고 살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거. 현실적이면서 희망적이기보단 굳센 모습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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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신의 작은 결점을 보며 실망하고, 열등감을 느끼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형편없지 않다. 분명 우리에게도 적잖은 장점이 있으며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랑스러움이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이를 계속 찾아내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인가? 우리는 이미 훌륭하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되,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 한참 푹 자 에너지를 채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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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어릴적 태어나자 마자 부모님의 이혼으로 생이별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매번 잦은 이별을 경험하며 남들보다 빨리 자립했다고 한다. 이런 태도들이 경험에서 나온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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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함께한 사람들
강현규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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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 가 대히트를 치면서 억울하게 죽은 어린 임금 단종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어릴적 조선의 역사를 책으로 접했기에 단종이라는 인물은 낯설지가 않았다. 억울하게 죽은 조선의 임금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게 오히려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단종의 존재를 알게됬다. 내가 연산군 다음으로 싫어하는 수양대군, 세조라는 왕의 처참한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세조는 단종을 죽인 뒤 꿈을 꿨다고 한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꿈에 나와 평생 저주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평생 심각한 피부병을 앓았으며, 원래 왕이 될 아들은 일찍이 사망했고 그뒤로 세자로 올려 왕이 된 예종도 단명하였다.

또한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죽는 순간까지 고통에 시달리며 예종의 병환을 걱정하다가 눈을 감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썰이 있다.

이 역사 이야기는 내게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지? 했던 이야기를 보며 고구마를 먹었던 참에 자신의 뒷감당을 못하는 세조가 웃길수밖에 없었다. 본인은 고통이지만 보는 이는 동치미인 것이다.

나는 단종의 이야기로 인해 의리란 무엇인지 되세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실리지 않은 세조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남을 헤치면 얼마나 벌을 받는지 또한 세겨졌으면 좋겠다.

<왕과 사는 남자> 를 보지 못했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의리에 감탄하고 말았다. 인간이 인간의 도리를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디까지가 의리일까? 그사람이 무슨 일을 당하던 정말 내가 평생 의리를 지킬 수 있을까?

할수있다, 못한다는 막상 목에 칼이 들어와야 정확한 답을 낼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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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말하지만, 단종의 사람들은 그 통념을 행동으로 부정했다. 세조가 그들의 이름을 족보에서 지우고 행정적 말살을 시도했을 때, 역설적으로 그들의 의지는 민초들의 전설과 유림의 기록 속으로 스며들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당대의 권력은 그들을 처단할 수 있었으나, 그들이 남긴 기록까지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수백 년 뒤 그들이 복권된 것은, 결국 신의를 지킨 자들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부활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장면이었다.

_ 219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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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진화 -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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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는 암을 정복하려 했다. 우리가 암치료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목적은 '소멸'이다. 암은 얌체같은 녀석이다. 놀러와서 친구들까지 데리고 눌러산다. 그리고 집주인이 방을 빼게한다. 자기들 마음데로 동네를 지배하고, 군집과 나라를 만든다. 우리는 이렇게 군집이 되어버린 암을 한 번에 쫓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수를 쓰자고 한다. 만성질환으로 바라보고 몸을 정상과 가깝게 적응시켜 이 얌체들이 더이상 안자라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한번에 없애면 좋겠지만, 한번 얌체들에게 문을 열어준 이상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태어날때부터 암과 함께 산다. 그것을 우리 몸이 계속 방어하느냐 한번이라도 열어주느냐의 차이로 우리는 암이다. 아니다로 나뉜다. 다른 이유로 사망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죽을때 약간의 암을 가지고 죽는다. 그게 어디든 말이다. (저자의 말로는 유방과 전립샘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얌체들을 어떻게 다스리며 살 것인가. 어디까지 우리땅이라고 기준을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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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세포들은 암세포끼리 협력할 뿐 아니라, 정상 세포들의 협력하는 특성을 편취할 수도 있다. 암세포는 더 많은 자원과 보호와 다른 이득을 요구하는 신호를 정상 세포에 보낼 수 있다. 우리 몸의 정상 세포들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다세포의 세포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세포 유기체인 우리는 우리를 기능하는 유기체로 만들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세포들을 갖도록 선택되어 왔다. 그리고 다른 세포로부터 오는 신호에 반응하여 기꺼이 돕는 것이 협력의 일부다. 암세포는 협력 신호 체계를 탈취해서 다세포체의 이런 근본적인 협력 특성을 제멋대로 이용할 수 있다. 암세포는 면역 반응을 탈취할 수도 있고, 지지 세포를 끌어들여서 암세포의 생존과 증식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 수도 있다. 암세포가 몸의 면역 세포와 지지 세포를 이용해서 자신을 위한 생태적 틈새를 조성할 때, 암세포가 번성할 수 있는 그 생태적 틈새는 다세포체의 안녕을 희생하여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면역 요법은 진화를 활용하는 암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들중에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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